[저출산·고령화 대책] ‘혼외 출산’ 거부감 강해… 사회적 합의 만만찮다

입력 2015-10-19 02:33
정부가 ‘비혼·동거 가정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것은 결혼제도 밖에서 태어난 아이가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게 법적·제도적으로 보장해주겠다는 취지다. 혼외출산에 대한 보수적 정서가 강한 가운데 이를 추진한다는 것은 정부가 저출산 현상을 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다양한 가족’ 받아들여질까

정부는 ‘가족’에 대한 기존의 가치관으로는 더 이상 저출산 재앙을 막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시안에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증가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수용성은 높지 않다”면서 “사회적 편견에 따른 여러 차별이 발생하고 있다”고 되짚었다.

해외 많은 나라가 혼외출산에 기대어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는 점도 정부 방침에 영향을 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혼외출산 비율(2012년 기준)은 38.7%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이 비율은 1.94%였다.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초저출산에서 벗어난 것은 동거 부부에 대한 법·제도적 지원을 강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근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난 것도 정부를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의 ‘2014년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13세 이상 남녀 가운데 결혼에 대해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38.9%에 이르렀다. 특히 여성은 43.2%가 이런 대답을 했다. 임신·출산에 대한 지원만으로는 출산율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법은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2011년 김영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현 상명대 교수)은 ‘미혼율의 상승과 초저출산에 대한 대응방향’ 보고서에서 “동거와 혼외출산 등 개방적 생활양식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보고서는 “혼외출산을 장려하라는 것이냐” 등 강한 여론의 반발에 부닥쳤다.

정부는 “각계 의견과 사회적 여건, 우리 법체계와의 조화 등을 고려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일단 내년에 비혼·동거가구에 대한 사회적 차별 금지 방안부터 연구를 시작할 계획이다.

출산 청소년·대학생, 학업 지장 없게

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서는 아이를 낳은 중·고생과 대학생이 학업과 양육을 병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정부는 일부 대학에서 도입한 ‘육아휴학’을 법제화해 학생이 학교를 쉬고 아이를 기를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유기홍 의원은 지난 7월 임신·출산·육아로 인한 휴학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 관계자는 “법안 통과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소년이 임신과 출산으로 학업을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위탁교육’도 내실화한다. 현재 중·고생 산모는 미혼모 기관에 강사가 파견되는 위탁교육을 통해 교육과정을 이수토록 하고 있다. 이를 산모 10여명이 한 반이 되는 교실형 수업으로 내실화해 교육 효과를 높이겠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일단 내년 서울의 한 미혼모 기관에서 시범사업을 한 뒤 확대 여부를 검토한다.

남성 육아휴직 활성화

정부는 남성 육아휴직 비율을 높이기 위해 내년부터 인센티브를 더 주기로 했다. 지금은 육아휴직한 남성 근로자에게 인센티브로 1개월에 한해서만 통상임금의 100%(다른 달은 40%)를 육아휴직급여로 주지만 내년부터는 3개월간 통상임금의 100%를 지급한다.

초등학교 1·2학년생에 대한 ‘돌봄 벼랑’이 해소될 수 있도록 2018년 법 개정을 통해 ‘초등돌봄교실’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될 예정이다. 2018년부터는 임신·출산 관련 의료비 본인 부담이 사라지게 된다.

각 광역지방단체가 나서서 지역 공공기관, 기업체 미혼남녀의 단체 맞선을 주선하는 ‘만사결통’ 프로그램도 추진된다. 정부는 결혼하고 아이 낳은 사람이 세금을 덜 내도록 세제를 중장기적으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만혼’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된 청년 일자리 부족에 관해선 노동시장 개혁으로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는 경제 구조를 만들겠다고 했다.

2020년 출산율 1.5명돼야 인구감소 3년 늦어져

정부는 3차 기본계획이 성공적으로 이행될 경우 2020년 출산율 1.5명을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출생아 수는 49만명을 목표로 세웠다. 지난해 출산율은 1.205명이고 출생아는 43만5400명이었다.

또 출산율이 2030년 1.7명을 거쳐 2045년 이후 2.1명을 유지할 경우 총인구는 2033년 5273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해 2050년 5059만명, 2100년 4088만명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통계청이 2011년 발표한 장래인구 추계와 비교하면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는 시기는 2031년에서 2034년으로 3년 늦춰진다.

생산가능인구는 출산율이 1.5명 이상으로 회복된다 해도 감소 시기(2017년)를 늦출 수는 없는 것으로 예측됐다. 다만 출산율을 회복할 경우 2050년 생산가능인구는 59만명 더 많아진다. 각각 2018년과 2026년으로 예측된 고령사회·초고령사회 진입 시기도 2020년 1.5명 출산율로는 늦추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