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박모(72)씨는 잠자고 있던 아들(41)을 죽이려고 했다. 평소 잘 마시지 않던 술까지 마신 터였다. 마침 거실의 과도가 눈에 들어왔다. 칼을 휘두르는 순간 잠에서 깬 아들이 가까스로 피했다. 아들은 오른쪽 윗입술을 다쳤다.
박씨는 멈추지 않았다. 아들은 왼쪽 팔과 등을 찔렸다. 당황한 그는 집을 나갔다가 잠시 후 돌아왔지만 아버지의 분노는 여전했다. 아들은 배를 두 차례 찔린 뒤 다시 도망쳤다. 정신을 차린 박씨는 경찰에 전화해 자신이 아들을 칼로 찔렀다고 말했다.
박씨는 아들이 미웠다고 한다. 군 제대 후 20년 넘게 변변한 직업도 없이 얹혀살며 손을 벌렸다. 박씨는 지방에 내려가 살겠다는 아들에게 이사 비용을 마련해주려고 서울 마포구의 2층 빌라를 세주고 지하방으로 옮겼다. 별다른 소득이 없는 박씨에게 집은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였다.
정작 아들은 이사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좁아터진 지하방에 눌러 살며 박씨 곁을 떠날 줄 몰랐다. 그렇다고 아버지를 돌보는 것도 아니었다. 지난 5월엔 박씨 몰래 지하방을 담보로 3900만원을 대출받기까지 했다. 박씨는 아들과 함께 지내는 게 불편해 집을 나가 노숙을 하기도 했다.
아들은 아버지를 걱정하지는 못할망정 천하태평이었다. 사건 당일인 지난 7월 22일 이른 아침도 박씨가 노숙을 하고 집에 돌아온 때였다. 아들은 방에서 아무렇지 않게 자고 있었다. 취기가 오른 박씨는 그 모습에 화를 참지 못하고 그만 칼을 집어들고 말았다.
서울 서부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심우용)는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박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아들이 고령인 아버지를 부양하기는커녕 계속 돈을 요구해 노숙생활을 하게 만들고, 아버지 몰래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등 반인륜적 행동으로 범행 동기를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범행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점, 경찰에 자수한 점,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김판 기자 pan@kmib.co.kr
‘캥거루 아들’ 참다 못해 칼부림 70대 老父 법원 선처… 재판부 “아들도 책임” 집행유예 선고
입력 2015-10-19 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