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17년 수립하는 중장기 이민정책은 2018∼2022년 5년간 국내에 들어올 외국인의 규모와 대상을 좌우하는 ‘나침반’ 역할을 하게 된다.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중장기 이민정책이 언급되기는 처음이다.
부족한 일손을 채우는 단기적 이민정책에서 벗어나 국내 경제와 인구 상황 등을 종합 고려한 정책을 만들겠다는 의도다. 우선 고학력 전문직과 우수 유학생의 한국사회 정착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한다.
정부는 이번 기본계획에 이민정책을 언급할지를 놓고 수차례 논의를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해지면서 중장기 관점에서 이민정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하게 제기돼 왔다. 다만 청년실업 등 일자리 문제와 맞물려 상당한 반발이 나올 수 있다. 부정적 여론을 넘어서는 게 가장 큰 과제다.
출산율 따라 이민 규모·대상 결정
정부가 ‘이민’에 주목하는 배경에는 저출산에 따른 장기적 인력난이 깔려 있다. 생산가능인구가 갈수록 줄면 기업과 개인의 경제활동이 위축된다. 인구 감소는 내수시장 규모 축소와 경기 하락도 유발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잠재성장률을 높이려면 이민자를 2030년 926만명, 2050년 1479만명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국내 출산율, 생산가능인구, 경제 상황, 귀화자 및 국적 상실·이탈자 등의 변화를 이민정책 수립에 고려할 계획이라고 18일 밝혔다. 이민자를 얼마나 받아들일지, 대상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할지는 법무부 등이 실무를 맡는 외국인정책위원회 논의를 거쳐 결정된다.
효과적인 정책 수립·추진을 위해 이민자 통계 관리도 강화한다. 2017년에 국내 거주 이민자 실태를 조사하고, 2019년엔 이민자 경제상태 등을 출입국 관리정보 시스템에 기록한다.
그동안 저출산을 고려한 중장기 이민정책이 없다보니 이민자 상당수가 단순노무 인력이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지난해 기준 전체 외국인 취업자(85만2000명) 중 조립직 및 노무직 비율은 71.2%(60만7000명)나 된다.
정부는 해외 사례 등을 참고, 해외 우수 인재 유치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미국은 1990년부터 과학자 예술가 등에 대해 우선적으로 이민을 허용해 왔다. 독일은 2004년 정보기술(IT) 전문가의 영주가 용이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정부는 외국 우수 인력을 중심으로 영주·귀화를 허용하도록 체류 자격을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학력·연령·한국어능력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전문직종 취업자격(E-7)을 갖게 하고, 일정 소득 이상을 버는 경우에만 거주(F-2) 또는 영주(F-5) 자격을 부여할 방침이다. 단순노무 인력은 장기 거주를 제한하고 선별적으로 체류를 허용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또 우수 유학생 유치를 확대한다. 석·박사급 유학생 유치 규모를 지난해 2만1535명에서 2020년 3만2646명까지 확대한다. 국내에서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분야에 유학생을 선발하고, 졸업 후 장기 취업을 지원한다. 외국 대학 학부생을 대상으로 단기연수를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기존에 일률적으로 지켜야 했던 내국인 구인노력 의무기간(14일)도 업종별 인력 상황, 내국인 채용 가능성 등을 고려해 7∼30일로 차등화한다.
“내국인도 취업 못하는데”
중장기 이민정책의 가장 큰 걸림돌은 청년실업이다. 당장 우리 청년들이 일자리를 잡지 못하는데 외국의 고학력·전문직 이민자를 받아들이면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또 정부는 우수 인력 유치에 초점을 맞추지만 산업현장에선 제조·노무직에서 주로 일손 부족이 생기고 있다. 이런 ‘미스매칭’도 해소해야 한다.
정기선 한국이민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수 인력이나 외국인 유학생은 한국에 오래 머무르려 하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우수 인력 확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한국인이 취업하기 어려운 직종에 선택적으로 유치·지원하는 등 충돌이 발생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연구위원은 “하청업체가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하는 경우 원청업체도 부담을 지게 하거나 외국인을 채용해 얻게 된 이익에 세금을 물리는 식으로 내국인 일자리를 늘리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저출산·고령화 대책] 이민정책 손 대지 않고는 ‘일손 부족’ 답 없어
입력 2015-10-19 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