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國定, 朴정부 國政 발목잡나

입력 2015-10-19 02:21
여야가 현수막 전쟁을 펼치고 있다. 새누리당은 18일 서울 강남 교보타워 사거리에 ‘대한민국 부정하는 역사 교과서 바로잡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왼쪽 사진). 바로 길 건너편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좋은 대통령은 역사를 만들고 나쁜 대통령은 역사책을 바꿉니다’라는 현수막을 설치해 맞불을 놨다.이병주 기자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역사 전쟁’에 대한 회의론이 여권 내부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 전쟁에 깊이 관여한 만큼 결과에 따라 후반기 국정 운영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수도권의 한 새누리당 의원은 18일 “지역 내 학부모들은 편향된 역사 서술의 개선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새누리당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는 식의 선동적 문구가 담긴 현수막을 내건 게 오히려 국정화 추진 동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국정화가 정답’이라는 공감대 형성 과정이 생략된 채 여권이 다소 무리한 논리로 국정화 밀어붙이기에 나설 경우 교육 문제에 민감한 수도권 유권자의 표심 이탈이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부 전문가도 역사 전쟁이 여권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념에 민감한 야당 성향 유권자들의 결집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는 것이다.

여권의 더 큰 고민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속도전이 박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라는 인식이 퍼져 있는 점이다. 새누리당 비대위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법과대학 명예교수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것(역사 교과서 국정화)은 박 대통령 퇴임 전에 이 문제를 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전면에 나선 싸움에서 결과가 나쁠 경우 노동개혁 등 민생 이슈 또한 힘을 잃을 수 있다.

이미 역사학계가 등을 돌린 데다 ‘8·25 남북합의’ 후 상승세를 이어가던 박 대통령 지지율이 꺾인 점도 여권 내 우려를 더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6일 발표한 주간 여론조사(13∼15일 성인 1003명 대상 전화 인터뷰,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 포인트) 결과 박 대통령 직무에 대한 긍정평가는 지난주보다 4% 포인트 하락한 43%로 조사됐다. 한국갤럽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발표를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새누리당은 국정화 반대 의견이 적지 않은 점을 고려해 향후 국정화 추진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는 데 여론전의 초점을 맞출 방침이다. 이를 위해 이른바 ‘올바른 역사 교과서’ 필요성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사례들을 담은 홍보물도 만들 계획이다. 당 지도부 역시 야당처럼 직접 학부모를 접촉한다거나 학교 현장을 방문하는 대신 편향된 역사교육 사례를 모아 전시회를 개최하는 방안 등을 통해 대국민 설득에 나서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정부의 국정화 추진은 ‘친일 교과서’를 만들려는 것이라는 야당 주장에 대해선 적극 대응할 방침이다.

한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지난 17일 새누리당 산악회 발대식에서 “지금 대한민국의 국사학자들은 90%가 좌파로 전환돼 있다”면서 “그들에 의해 쓰인 중·고교 교과서는 현대사를 부정적 사관으로 기술하고, 패배한 역사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