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 숫자에 목맨 정부… 전문가 “수치에 집착 말고 성장의 질 따져야” 지적

입력 2015-10-19 02:43

정부가 지난 1일부터 2주간 진행한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로 올 4분기 국내총생산(GDP)과 민간소비 성장률이 각각 0.1% 포인트, 0.2% 포인트 상승하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18일 밝혔다. 행사가 끝난 지 단 4일 만에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등 주요 22개 유통업체의 매출 실적을 취합, 전년과 비교해 내놓은 수치다. 그러나 이 기간 중 늘어난 매출액 7194억원 중 1130억원은 올해부터 이뤄진 담뱃값 2000원 인상에 따른 자연 상승분이다. 또 가계소득이 정체된 상황에서 소비 여력을 앞당겨 쓰게 유도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이를 감안하지 않은 채 정부가 경제적 효과를 ‘숫자’로 포장해 강조한 셈이다.

정부가 숫자에 집착하고 있다. 매년 성장률 전망치를 기대치로 잡는 관행에 더해 최근에는 경기회복이 되고 있다는 시그널을 경기지표로 보여주기 위해 여러 가지 단기 부양책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8월 자동차와 대형 가전제품에 대한 개별소비세 인하다. 정부는 연말까지 두 제품에 대해 한시적으로 개별소비세율을 1.5% 포인트 인하했다. 정부는 당시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로 4분기 성장률이 0.1% 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동차와 대형 가전제품이 당장 연내 많이 팔릴지 몰라도 두 제품의 구매 연한이 10년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내년 이후 당분간 매출 감소는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지난 7월 11조6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당시에도 정부는 추경으로 성장률이 0.3% 포인트 제고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쓴 단기부양책만으로도 정부가 성장률을 0.4∼0.5% 올린 셈이다.

정부는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서는 쓸 수 있는 카드는 모두 쓸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연말 퇴임과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보여주기식 정책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추경 및 개소세 인하 효과 등에 힘입어 최 부총리 퇴임 전 마지막 성적표가 될 올 3분기 성장률은 6분기 만에 0%대(전기 대비) 성장률을 탈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블랙프라이데이 효과는 미래의 소비를 앞당겨서 낸 효과일 가능성이 높다”며 “내년 총선은 결국 4분기 성장률로 치르기 때문에 단기 부양책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단기적 숫자에 집착해 우리 경제 성장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 경제성장이 가계에 골고루 분배돼 소비여력이 생기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경제가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가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09∼2013년 국민총소득(GNI) 대비 기업소득 비중은 평균 25.1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특히 2000년 이후 기업소득 비중은 회원국 중 가장 급격히 증가했다. 경제성장률이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에서 가계가 가져가는 성장의 과실 역시 급격히 적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당장 올해 성장률 3% 달성에 목매지 말고 장기적으로 성장의 질 개선에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중국 경제위기 등 항상 큰 위기가 있기 전에는 과도한 내수 부양책이 있었다”면서 “소득이 정체되고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3% 성장이라는 양적 성장 목표에 집착하기보다는 구조개혁을 통한 성장동력 확보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윤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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