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편향성 논란 해부] 이승만 ‘抗日’ 저평가는 사실… 박정희 ‘功過’ 균형서술 노력

입력 2015-10-19 02:17

교육부는 이승만·박정희정부에 대해 검정 교과서 집필진이 비뚤어진 시각을 갖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교육부가 한국사 교과서의 좌편향 서술 사례를 정리해 놓은 ‘고교 한국사 교과서 분석’ 자료에 이런 판단이 고스란히 실려 있다. 두 인물의 공로는 축소하고 과실을 부각시켜 기술했다는 게 교육부의 결론이다.

실제로 그럴까. 국민일보 취재팀이 각 교과서 내용을 확인하고 학계의 자문을 받아가며 분석한 결과 이승만정부 부분은 교과서들이 비판에 몰두했다는 점을 부인하긴 어려웠다. 이승만을 ‘건국 공신’으로 추앙하는 우익 입장에선 ‘매도됐다’고 불만을 품을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박정희정부 부분은 비교적 공과를 균형 있게 서술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일부 교과서는 아주 호의적으로 다뤘다고 생각될 정도여서 ‘좌편향’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이승만정부, 지나친 저평가…의도적일까

우편향 논란을 빚은 교학사 교과서가 다른 교과서와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관련된 부분이다. 교육부도 교학사에 “교과서는 전기(傳記)가 아니다”고 핀잔을 줬다. 공적만 부풀렸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다른 교과서들은 너무 날을 세웠다고 지적했다. 특히 남북 분단의 책임을 이승만의 책임으로만 기술한 점은 문제가 있다고 봤다. ‘정읍발언을 통해 공개적으로 남한 단독정부 수립 주장’(금성출판사), ‘남한만이라도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정읍발언으로 반향’(리베르스쿨) 등 정읍발언을 소개하면서 김구·김규식 등의 공동정부 수립 활동과 대비시켜 이승만의 권력욕이 분단을 불러왔다고 읽힐 수 있게 기술됐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소련과 북한에 분단의 책임이 더 무겁다는 역사적 사실을 집필자들이 간과했다고 주장했다. △소련이 1945년 9월 단독정부 수립 지시 △소련이 1945년 8월 남북 도로·철도·통신·우편 차단해 분단조치 단행 △이런 과정이 동유럽 공산화와 흡사한 점 등을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공산주의자들이 분단의 책임을 이승만에게 돌리는 ‘적반하장’식 공격 방식을 교과서가 받아썼다”고 힐난했다.

‘이승만 홀대’는 항일운동을 다룬 부분에서도 두드러진다. 이승만이 외교활동으로 미국에서 대한민국 독립을 인정받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는 거의 다루지 않은 반면 국제연맹에 위임통치를 청원해 임시정부 대통령에서 탄핵되고, 이 때문에 임시정부가 침체를 겪었다는 점은 부각시켰다. ‘독립 문제를 국제 여론화하는 데 힘썼다. 미주 지역에서는 이승만을 중심으로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이 꾸준히 전개됐다’(리베르스쿨)고 평가한 곳도 있지만 현저하게 분량이 적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반민특위 활동을 방해한 점은 상세하게 소개했다. 장기 독재를 위해 비판적 언론과 반대파를 억압하고 공포정치를 폈으며, 대대적인 선거 부정을 저질러 민의를 왜곡한 점도 부각했다. 권력을 위한 반대파 숙청을 들어 김일성과 이승만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교과서까지 있었다. 공산주의의 침투를 막아내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공적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는 게 교육부 주장이다.

박정희정부, 좀 야박했던 정도인데…

교과서들의 박정희정부 기술 태도는 ‘군사정변으로 집권해 공포정치를 폈다’ ‘하지만 경제성장을 이뤘다’는 일반적 역사인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았다. 교육부는 좌편향 기술의 사례로 ‘한·일협정’ ‘베트남전 참전’ ‘새마을운동’ ‘산업화’ ‘유신’ 등을 예시했다. 하지만 교과서에 따라 ‘조금 야박했다’ 싶은 정도였고, 좌편향으로 규정하기엔 억지스러운 면이 있었다. 오히려 일부 교과서는 경제성장의 치적을 매우 높이 평가해 ‘우편향’으로 읽히는 부분도 있었다.

한·일협정 대목을 보면 비상교육이 가장 비판적이었다. 추진 배경으로 ‘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경제발전’이라고 규정했다. 또 반대 집회를 폭력으로 진압한 점을 설명하고 “일본군 위안부, 강제 징병·징용, 원폭 피해자 등의 배상, 약탈 문화재 반환, 독도 문제 등은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럼 비상교육은 좌편향일까. 베트남전 기술을 보면 “국군의 전력 증강과 경제 개발을 위한 차관을 제공받았고 (중략) 하지만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됐다”면서 비교적 긍정적 시각을 보였다. 대다수 교과서들은 경제성장의 마중물이 됐지만 라이따이한 등 부작용도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학계는 “‘남의 고통으로 잘살게 됐다’는 투의 기술은 비교육적”이라는 입장인데 교과서들이 오히려 경제적 이득을 강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베트남전에 가장 비판적이었던 곳은 동아출판이었다. ‘제3세계에서 입지 약화’ ‘5000여명 군인 죽고, 1만여명 부상’ ‘수만명이 고엽제 피해’ ‘베트남 민간인 희생’을 부각했다. 하지만 한·일협정에 대해서는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소련, 중국, 북한에 맞서 한·미·일 협력”이라며 불가피성을 언급하고 있었다.

한·일협정에 가장 비판적이었던 비상교육이 새마을운동을 기술한 부분을 보면 “다른 개발도상국들이 이를 학습할 만큼 농촌을 발전시킨 사례로 평가” “새마을운동 기록물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라면서 긍정적 평가에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박정희정부의 경제성장은 긍정 평가가 많았다. ‘눈부시게 성장, 한강변의 기적’(동아출판), ‘경부고속국도가 건설됐고 베트남 특수로 경제가 급속 성장, 한강의 기적’(비상교육) 등으로 칭찬했다. 교과서 집필자들이 박정희정부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리는 게 아니라 교육부 가이드라인 속에서 나름의 시각대로 기술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유신독재에 대해서는 대다수 교과서가 비판적이었다. 교육부는 천재교육이 유신헌법을 설명하고 바로 뒤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 내용을 넣어 ‘박정희=김일성’을 노린 ‘악마의 편집’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자의적 판단으로 보인다. 교학사도 유신에 대해서는 “자유민주주의 정도에서 벗어난 비정상 체제인 동시에 독재”라고 규정했다.

이도경 전수민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