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토요일 오전임에도 연극, 무용, 음악 등 공연계 관계자를 비롯해 100여명이 모여들었다. 세계 공연예술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로버트 윌슨(74·사진)의 강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광주 아시아예술극장이 23∼25일 ‘해변의 아인슈타인’ 공연을 앞두고 마련한 ‘컨템포러리 토크’에 등장한 윌슨은 평소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작품 제작과 관련해선 양보가 없다. 하지만 이날 강연회에서 들려준 예술관은 객석의 찬사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윌슨은 미국 출신으로 1970년대 이미지 연극을 앞세워 포스트모던 연극의 창시자 반열에 올랐다. 지금도 세계 주요 극장과 페스티벌의 단골손님이다. 정규 연극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그는 60년대 뉴욕에서 건축과 미술 등 시각예술과 관련한 퍼포먼스를 통해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뉴욕은 전형적인 프로시니움(액자형) 극장에서 벗어나 주차장, 갤러리 등에서 평상복 차림으로 퍼포먼스를 펼치는 자연주의, 심리주의 사조가 강했다. 극장이 만들어내는 인공적인 ‘환영(illusion)’에 저항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윌슨은 당시 예술계 흐름을 거역하고 프로시니움 극장으로 돌아왔다. 그는 “환영에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나는 인공적인 무대 언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면서 “당연히 배우의 연기는 일상과 달라져야 했으며 조명이나 무대 배경 등도 배우와 동등한 위치에서 다뤄져야 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동료 아티스트들은 극장으로 돌아간 내게 등을 돌렸다. 심지어 침을 뱉는 조각가도 있었다”며 웃었다.
그는 70년대 초반 ‘귀머거리의 응시’ ‘스탈린의 삶과 시간’ 등 치밀하게 구성되고 디자인된 대작들을 발표했다. 12시간짜리 ‘스탈린의 삶과 시간’을 본 미니멀리즘 작곡가 필립 글래스가 그를 찾아오면서 20세기 후반 혁명적인 공연으로 꼽히는 ‘해변의 아인슈타인’이 나오게 됐다. 3가지 주제가 변주되는 4막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은 음악, 내러티브, 스토리가 중심이 된 기존 오페라와 달리 관객에게 비선형적인 이미지들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최근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윌슨의 연출로 공연된 독일 베를린 앙상블의 ‘셰익스피어 소네트’ 역시 이런 메소드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76년 초연된 ‘해변의 아인슈타인’이 40년이 돼서도 꾸준히 공연되는 것과 관련해 그는 “공연은 원래 라이브여서 수명이 짧지만 이상적인 작품은 늘 새롭게 해석되고 세대를 이어 영감을 불러일으킨다”면서 “고전은 얼핏 형식만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안으로 파고들수록 많은 미스터리를 담고 있는 법”이라고 말했다. 또 “아티스트로서 모든 예술형식에서 영감을 받는다. 관객에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이미지 연극 창시자 로버트 윌슨 “이상적 작품은 늘 새롭게 해석돼 세대를 이어 영감 불러 일으킨다”
입력 2015-10-19 0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