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저출산 대책 획기적 남녀평등 확보가 우선이다

입력 2015-10-19 00:22
정부가 2020년까지 합계출산율을 1.5명으로 높이기로 했다. 정부는 19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내년부터 2020년까지 추진할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시안 공청회를 연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번 시안에서는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를 위해 청년 일자리를 늘리고, 신혼부부의 주거비와 의료비를 대폭 낮추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저출산의 핵심 원인이 만혼(晩婚)과 비혼(非婚) 현상에 있다고 분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 대책은 이번에도 과녁을 빗겨간 것 같다.

개인에게도 결혼은 나고 죽는 것에 버금갈 정도로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이뤄진다. 하물며 정부의 의지로 청년들의 결혼 시기를 앞당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어떤 나라나 문화권에서든 교육과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 결혼이 늦어지는 게 당연하다. 유럽 선진국들의 평균 초혼 연령은 우리나라보다 높거나 비슷하지만, 합계출산율이 2명에 육박한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21명에 불과하다. 만혼과 비혼은 저출산의 원인이라기보다 저출산을 초래하는 다른 원인들의 결과다.

정부는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출범시키고 100조원 이상의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출산율을 높이지 못했다. 당시 정부와 전문가들은 영유아 보육만이라도 확실하게 정부가 책임지자며 투자 우선순위를 그 항목에 두었다. 그러나 전달체계가 잘못됐다. 많은 국가예산이 탈법·편법 운영을 하는 사립 보육원장들의 배를 불리는 데 들어갔다. 그 예산을 애초부터 국공립 보육원과 유치원 증설, 보육교사 양성에 썼더라면 지금쯤 상황은 적지 않게 개선됐을 것이다. 정부는 최소한 저출산·고령화, 청년실업 등의 문제에서는 ‘큰 정부’ 혐오증부터 버려야 한다.

저출산 대책 가운데 우선순위를 하나만 꼽으라면 획기적 남녀평등이다. 지금과 같은 단시간 근로 활성화나 질 낮은 일자리를 만드는 여성고용 지원 제도로는 어림도 없다. 우리나라 여성의 지위나 ‘유리천장지수’가 출산율과 마찬가지로 세계 최하위권이라는 점은 시사적이다. 여성 일자리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성 차별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대부분 기업 내에 엄존하는 출산·육아와 관련된 실질적인 불이익 관행을 없애려면 이에 대한 엄벌 외에는 답이 없다. 또한 공기업 평가에서 여성 친화적 관행과 남성 육아휴직 활성화 정도에 큰 비중의 가점을 줘야 한다.

우리나라가 오래 유지해 온 가족의존적 복지제도와 ‘1인 부양자 모델’의 근본적 수술이 필요하다. 독일 정부는 2002년 ‘어젠다 2010’을 수립하고 ‘1인 부양자 모델’을 ‘2인 부양자 모델’로 전환한 후 출산율을 크게 높였다. 이와 함께 공적 보육 제도와 모성보호 제도를 강화해 성과를 거뒀다. 출산율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결국 손 큰 정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