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유호열] 북한 노동당의 좌절과 활로

입력 2015-10-19 00:20

지난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당 70년 기념식 자체는 북한 노동당의 일방적 선전과는 달리 기대 이하였다고 할 수 있다. 장거리 미사일 발사나 4차 핵실험 같은 위협적인 도발이 없어서가 아니라 북한 스스로 자축하는 모습에서 지난 70년간 북한 체제와 그 체제를 주도했던 공산당의 모순,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북한은 공산당인 노동당이 국가를 통제하는 일당독재 국가다. 또한 북한은 수령중심 체제로서 수령이 당과 국가 위에 군림하는 절대왕조 체제를 3대째 유지하고 있다. 그러한 북한의 지배 정당인 노동당 70년 역사를 돌아보면 그 실상은 그들의 주장대로 성공과 영광의 역사라기보다 좌절과 모순의 악순환이었다.

북한 노동당의 가장 큰 좌절은 당이 지향했던 인민의 행복, 인민의 해방을 이룩하지 못했다는 데 기인한다. 김정은이 기념연설에서 수십 번 인민을 언급했지만 역설적으로 노동당은 인민을 위해 존재하고, 인민의 행복을 위해 복무하지 않고 오로지 수령과 평양의 핵심 간부들을 위해 나머지 인민을 희생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인민의 첫째 행복이 배불리 먹고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면 어떤 사실도 현재 대다수 북한 인민들의 삶이 이러한 기준에 도달했다고 입증할 수 없다. 북한보다 훨씬 못살던 구공산권 국가들을 비롯해 수많은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제삼세계 비동맹 국가들이 오늘날 개혁·개방을 통해 자국 인민들의 생활 수준을 급속히 향상시키고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북한 노동당은 지난 70년간 미 제국주의와 남조선 괴뢰들의 침략 야욕과 제재 압박에 대항하여 주체와 자주, 자립을 달성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체 강국,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인민과 체제의 궁핍함이 불가피했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궁색한 변명일 뿐이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다시 한번 확인했듯 미국과 한국은 북한의 핵 개발 등 무모한 도발을 용인하지 않을 뿐이지 북한 체제를 전복하거나 흡수통일을 기도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스스로 위기 상황을 조성하고, 이를 근거로 주민을 핍박함으로써 체제 자체의 발전 가능성을 원천 봉쇄한 노동당의 그릇된 상황 인식과 폐쇄적 대응 방식이 문제일 뿐이다.

지난 70년 역사를 돌이켜보면 북한지역에서 지배 정당으로 군림해 온 노동당이 한반도 북쪽에서 2500만 주민을 억압하고 통제할 더 이상의 명분과 정당성을 찾을 수 없다. 300만 당원과 국가 기간 조직을 총체적으로 장악한 조직 구성상 절대 권력으로서의 위상이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러한 일당독재와 억압의 논리는 현재와 같은 세습체제 하에서는 모순만 양산함으로써 결국 내부 폭발을 모면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노동당이 지배 정당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대표성과 책임성을 회복해야 하는데 결국 강제로 정당성을 부여한 수령제와 양립하지 못한 채 갈라설 운명에 놓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30대 초반의 3대 수령 김정은은 인민제일주의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다. 역사상 가장 가혹한 세습 독재자로서 인민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고, 인민을 위해 복무할 것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더 이상 인민을 독재자 수령의 테두리에 묶어둘 명분과 역량이 고갈되어 감을 방증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집권 4년차의 나이 어린 수령은 70 성상의 노쇠한 노동당을 상대로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사실은 수령도 노동당도 분노한 북한 인민들로부터 토사구팽의 처지를 면하기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 노동당은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탈수령제로의 노선 전환을 모색해야 하고, 수령은 한·미 공동 성명을 수용해 비핵화의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것이 둘 다 사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유호열(고려대 교수·북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