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진애] 다른 역사를 알게 될 때

입력 2015-10-19 00:20

일생을 살면서 깜짝 놀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다른 역사를 알게 되었을 때가 그중 하나다. 어떤 사람의 비밀이나 숨겨져 있던 가족사를 알게 될 때만큼 그 충격과 배신감과 깨달음은 대단하다.

어릴 적, 미국 서부영화에서 인디언을 소탕하는 모습을 당연시하다가 인디언의 땅과 역사를 유린한 미국 개척사를 배우고 나서 그 잔혹한 폭력에 놀랐었다. 성전이라 배웠던 십자군전쟁이 이념 전쟁으로 교황의 세력을 추구했던 것임을 알았을 때의 충격은 대단했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상식이지만 선조가 무능했을 뿐 아니라 백성을 도성 안에 두고 도망쳤던 왕이었다는 사실, 폭군으로 배웠던 광해가 명·청 간 균형외교를 펼쳤던 사실을 놀라움으로 배웠다. 영화 ‘사도’에서는 부자간의 충돌이 부각됐지만 영조와 사도세자 주변에 작동했던 노론, 소론의 당쟁에 대해서는 지금도 해석이 분분하다.

근현대사는 더하다. 베트남 파병을 애국이라 배우며 자랐지만 ‘가장 추악한 전쟁’에 숨어 있던 미국 군산복합체의 입김과 거의 모든 독재국가들에서 미국 정보부의 공작이 작용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배신감은 무척 컸다. 그러니 현대사는 오죽하랴? 5·18광주민주화운동 직후에 해외유학을 갔는데, 어렴풋이 의아하게 여겼던 충격적 사실들을 외국에 가서야 눈과 귀로 직접 확인했을 때 느꼈던 분노와 좌절감과 부끄러움과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그 부채감을 항상 의식하며 살게 되었다.

우리의 일생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덜 다투며 모여 사는 방법을 익히는 과정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각을 할 수는 절대로 없다. 역사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역사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만이 역사의 유일한 진실’이다. 하나의 역사, 통일된 생각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전체주의다. 우리가 21세기 세계에 산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자. 역사의 다양한 해석을 접하며 끊임없이 배우고 깨닫는 것, 그것이 앞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부디 미래를 막지 말라.

김진애(도시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