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진 처녀작 ‘토막’ 국립극단 첫 공연… 일제 강점기 농촌의 비참한 현실 생생

입력 2015-10-19 02:39
연출가 김철리가 연출하는 연극 '토막'에 출연 중인 배우들이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극중 명수네 가족이 돈을 벌겠다며 일본으로 떠났던 명수가 '해방운동'을 하다 감옥에 갇혔다고 보도한 신문을 보고 있다. 국립극단 제공
'토막'을 쓰던 1931년의 유치진. 서울예술대학 제공
한국 연극의 개척자 유치진(1905∼74)의 처녀작이자 한국 리얼리즘 연극의 효시인 ‘토막(土幕)’이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22일부터 11월 1까지 이어지는 ‘토막’ 공연은 지난해부터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를 시작한 국립극단이 오영진의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와 김우진의 ‘이영녀’에 이어 세 번째로 올리는 작품이다.

‘토막’은 신파극 위주의 연극 풍토를 개혁하고 진정한 의미의 신극(근대극)을 소개하기 위해 설립된 극예술연구회 최초의 창작극이다. 1931년 12월에서 이듬해 1월에 걸쳐 ‘문예월간’에 희곡이 게재됐으며, 32년 2월 경성공회당에서 홍해성의 연출로 초연됐다. 20년대 일제 강점기 농촌을 배경으로 집안의 희망인 아들이 돈 벌러 일본으로 떠난 뒤 근근이 살아가는 명수네 가족과 빚을 갚지 못해 토막 같은 집마저 뺏긴 경수네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비참한 현실을 보여준다. 식민지라는 공통의 역사적 아픔을 겪고 있던 아일랜드 극작가 숀 오케이시의 영향이 많이 보인다.

‘버드나무 선 동리의 풍경’ ‘소’와 함께 유치진의 초기 농촌 3부작에 포함되는 ‘토막’은 한국 연극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일부 소개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 공연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국립극단이 무대에 올리는 것도 처음인데, 김철리 연출로 김정환, 김정은, 황선화, 김정호, 박지아, 박완규, 문경희 등 중견 배우들이 출연한다.

국립극단은 ‘토막’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재조명한다는 의미를 더하기 위해 전시, 심포지엄 등 부대행사도 마련했다. 공연기간 달오름극장 로비에서 ‘한국의 근대극과 유치진’ 전시회를 개최하고, 25일에는 심포지엄 ‘토막-90분 토론’, 31일에는 강연회 ‘살아 숨 쉬는 한국 근대극을 만나다!-근대극과 주요 연극인들’을 열 계획이다.

올해는 유치진 탄생 1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유치진은 극작은 물론 연출, 비평, 교육, 극장, 제도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 연극사 전반에 굵직한 발자국을 남겼다. 정부를 설득해 국립극장을 세우도록 하고, 록펠러 재단의 기금을 바탕으로 드라마센터(지금의 남산연극센터)와 서울예술대학을 설립한 것은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힌다.

하지만 41년부터 4년간 친일 어용극을 주로 공연한 현대극장 대표를 지냈고, 친일파 이용구를 찬양한 ‘북진대’를 공연하는 등 연극계의 대표적인 친일파로 꼽히기도 한다. 80년대 들어 그의 친일행적이 부각되면서 91년 문화부에 의해 ‘4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됐다가 시민단체 반대로 취소됐는가 하면 95년엔 통영에 세워졌던 흉상이 철거되기도 했다. 그는 민족문제연구소나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등에서 펴낸 친일파 명단에서 빠지는 법이 없었다.

올 들어 서울예대 출신 극단인 동랑 레퍼토리 씨어터가 지난 6월 ‘한강은 흐른다’를 공연하는 등 그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원로 연극학자인 유민영 서울예대 석좌교수가 지난 4월 유치진 평전 ‘한국연극의 아버지 동랑 유치진’을 출간해 그의 공과를 다시 돌아볼 기회를 제공했다.

유 석좌교수는 16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40년대 유치진의 친일 활동은 일본 총독부의 협박 때문에 마지못해 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시인 한용운처럼 대단한 심지를 가진 소수를 제외하고 지식인들 대부분이 일제에 굴복했다. 유치진이 적극적인 친일활동을 했다면 끝까지 창씨개명을 왜 안했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유치진은 연극을 넘어 한국 문화예술 전반에 큰 기여를 한 ‘문화인’이었다. 친일행적은 그의 인생에서 ‘옥에 티’인 것은 분명하다. 그의 공과(功過)를 나누자면 공은 90%, 과는 10% 정도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