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당시 좋은 재료로 멋진 셰프 앞에서 요리할 수 있다는 게 신나서 그저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오디션을 마친 뒤 떨어질 것 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15일 롯데호텔에서 만난 고수현(30) 섹션(Section) 셰프(Chef)는 ‘스펙태클 오디션’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고 셰프는 롯데그룹이 올해 신입사원 채용에서 처음 실시한 스펙태클 오디션을 통과해 롯데호텔 조리팀에 입사했다. 스펙태클 오디션은 학력, 경력 등 스펙 대신 순수한 직무수행 능력만을 평가해 인재를 선발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고 셰프는 지난 6월 당시 9명의 쟁쟁한 후보자들과 요리로 경합하는 오디션까지 거쳐 최종 합격자로 선발돼 지난달부터 롯데호텔의 프렌치 레스토랑 ‘피에르가니에르’에서 근무하고 있다. 미슐렝 가이드 3스타 레스토랑인 이곳은 국내 요리사라면 누구나 입사를 원하는 꿈의 직장이다.
입사 후 밝혀졌지만 사실 고 셰프의 스펙은 상당히 화려하고 이색적이었다. 그는 세명대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했고, 미국에서 관련 석사 과정까지 밟았다. 요리에 대한 꿈이 컸던 그는 다시 미국의 3대 명문 요리학교로 꼽히는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 입학해 요리를 배웠다. 그러나 입사지원서 평가를 통해 결정된 오디션에서는 고 셰프의 학력이나 특이한 이력은 전혀 밝혀지지 않았고, 평가 대상도 아니었다.
고 셰프를 최종 합격으로 이끈 것도 그의 화려한 경력이 아니었다. 실제 고 셰프는 오디션을 마친 뒤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자신보다 능숙한 실력을 갖춘 후보자들이 더러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고 셰프는 “오디션 당시 즐거운 맘으로 요리에만 몰두했는데, 그런 모습을 평가자들이 좋게 봐준 것 같다”고 말했다.
고 셰프는 현재 주방에서 메인 요리에 앞선 시작요리(스타터) 중 하나를 책임지고 있다. 보통 주방 경력이 10년은 넘어야 맡을 수 있는 중요한 일이지만 특별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그의 능력을 주방에서도 배려해주고 있었다.
고 주임의 멘토 역할을 하는 조성균(37) 수(Sous) 셰프는 고 셰프에 대해 “프렌치 요리에 꼭 필요한 와인 분야에 상당히 조예가 깊고 요리 감각도 뛰어나다”고 말했다. 또 “훌륭한 요리사가 될 수 있는 부지런함과 성실함이라는 중요한 덕목을 갖췄다”고 칭찬했다.
이른 나이에 중책을 맡다보니 고 셰프의 부담감은 큰 편이다. 이 때문에 그는 남들보다 2∼3시간 일찍 주방에 출근하고, 모두가 일과를 마칠 때까지 주방을 지킨다. 고 셰프는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해야 일을 더 빨리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며 “미래 롯데호텔을 이끌어 나가는 훌륭한 요리사로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노용택 기자 nyt@kmib.co.kr
‘즐기는 요리’로 꿈의 직장 취업… 스펙 따지는 세상에 태클을 걸다
입력 2015-10-17 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