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양정호] 국립대총장 직선제 필요없다

입력 2015-10-17 00:05

대학에 대한 시선이 따갑다. 청년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어렵다면서 스스로를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집 꿈 희망까지 포기한 칠포세대라고 부른다. 인터넷상에서는 “헬조선”이나 “지옥불반도”라는 절망 섞인 목소리까지 들린다. 대졸자가 사회에서 대접받는 시대가 지난 것이다. 대학도 일정한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있다.

앞으로 닥쳐올 쓰나미 같은 학령인구 감소와 생사를 결정하는 글로벌 경쟁 심화라는 시대 변화와 마주하게 될 대학사회는 바람 앞의 등불 신세와 같다. 세계적인 대학 평가에서 우리 대학의 성적은 일본이나 중국에도 뒤진다. 전국의 200여개 4년제 대학 중에서 서울대, KAIST, 포스텍 정도만 100위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을 정도다. 특히 10위권 대학은 거의 대부분 미국 대학으로 나타났다. 미국 대학들이 세계 정상의 대학으로 자리 잡게 된 데에는 대학 총장의 리더십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은 375년 동안 총장이 겨우 28명이다. 평균적으로 13년 정도 총장 임기를 수행한 것이며, 21대 엘리엇 총장은 무려 40년 동안 재임했고 지금의 하버드 대학을 만드는 데 기초를 닦았다. 하지만 우리 대학의 현실은 정반대다. 서울대는 69년 동안 무려 26명이 총장직을 수행해 왔다. 한마디로 제대로 된 대학 운영을 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금 국립대 총장 직선제에 대한 논란이 심화되고 있지만 세계적 추세에서 볼 때 국립대 총장 직선제는 우리 현실에서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라고 본다. 지난 수십년 동안 총장 직선제의 폐해는 정치권의 부패 논란 못지않게 심각한 수준이었다. 정치권의 여당과 야당의 공약 남발, 이전투구, 파벌싸움, 제 식구 챙기기 행태가 고스란히 국립대 총장 직선제에서 반복되었다. 물론 80년대에 대학의 민주화와 자율성을 어느 정도 확보하는 데 기여한 부분이 있지만, 지금의 현실에서 총장 직선제는 국립대가 처한 현실을 더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기묘하게도 국립대 총장 직선제를 없애자고 얘기가 나온 것은 노무현정부 때다. 2005년 5월 취임 100일을 맞은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국립대 총장 직선제로 폐단이 너무 심하니 선진국의 간선제 추세에 맞춰 총장을 간선으로 선출토록 추진했으며, 이후 지금까지 국립대 총장 선출은 간선제를 원칙으로 모두 바뀌었다.

국립대 총장 직선제 추진 과정에서 대학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교육부의 추진 방식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12년 총장 직선제 개선을 핵심으로 하는 국립대 선진화 방안을 추진하면서 교육부는 재정지원비와 총장 직선제를 연계하기 시작했다. 재정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대학에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대학 구성원들 입장에서는 백기투항하라는 요구에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좀더 세련되게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각 대학이 총장 직선제가 지닌 문제점을 공유해가면서 자연스러운 공감대를 형성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제 국립대와 교육부가 서로 한 발씩 물러나 국립대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교육부는 국립대 총장 선출에 불필요하게 간섭한다는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도 경북대, 공주대, 한국방송통신대 총장후보 임용제청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대학은 대학 자율성만을 고집하기보다 대학과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대안을 제시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양정호(성균관대 교수·교육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