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편향성 논란 해부] ‘6·25 남침’ 쓰지 않았다는데… 대부분 명시

입력 2015-10-16 02:23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경기도의원들이 15일 도의회 교육위원회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촉구 건의안'을 단독으로 처리하자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이 단상을 점거한 채 대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여당은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 체제로 전환하면서 ‘좌편향’을 지적했다. 주민을 죽이고 굶기는 북한엔 지나치게 호의적이고,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으로 발돋움한 대한민국은 정통성을 부정하는 등 ‘헐뜯는 교과서’가 만들어져 아이들에게 읽히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국민일보는 3회에 걸쳐 정부·여당의 ‘편향 서술’ 주장을 분석한다. 교육부가 최근 ‘국정화 명분·논리’를 집약해 여당 의원들에게 제공한 ‘고교 한국사 교과서 분석’ 자료(이하 분석자료)를 토대로 학계의 자문을 받았다. 먼저 교육부가 ‘친북 성향’ 기술이라고 지적한 부분을 짚어봤다.



무리한 명분·논리 적잖아

교육부 주장 가운데 국정화를 위해 무리하게 ‘끼워 맞춘’ 명분과 논리가 없지 않았다. 6·25전쟁의 원인에 대해 역사 교과서들이 양비론을 펴고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교육부는 분석자료에서 “6·25전쟁은 소련의 승인과 마오쩌둥의 지원으로 벌어진 계획적 침략이 명백하다”면서 “(현 교과서는) 1989년 나온 ‘해방전후사의 인식’(최장집·정해구)의 시각에 영향을 받아 양비론을 편다”고 했다. 교육부가 문제 삼은 부분은 이렇다.

‘6·25전쟁 직전 남북이 각각 북진통일과 적화통일을 내세우며 옹진반도를 비롯 (중략) 잦은 무력충돌을 빚고 있다.’ ‘전쟁의 동기 면에서 인민공화국이나 대한민국이나 다를 바 없다.’(미래엔 교과서 내용 중 발췌)

두산동아와 금성 교과서는 명시적으로 ‘남침’ 표현을 쓰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대다수 교과서들은 6·25전쟁이 북한의 도발이라는 점을 비교적 명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두산동아의 경우 ‘38도선에서 무력충돌’ 부분을 다루긴 했지만 북한이 중국·소련과 전쟁 준비에 몰입했다는 점도 부각했다. 리베르스쿨은 참고자료 형식으로 ‘6·25전쟁의 진상을 알려주는 소련의 외교문서’를 통해 전쟁 발발의 원인이 북한 때문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천재교육은 ‘북한은 남북한 총선거로 통일 정부를 수립하자는 평화통일 공세를 벌이는 한편,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며 북한의 이중적 행태를 지적하기도 했다.

3대 세습의 경우 교육부는 “북한의 권력 세습에 대해 ‘3대 세습’이라고 직접적으로 기술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두산동아와 천재교육이 그렇다는 건데 두 교과서는 ‘김정일이 사망하고 아들 김정은이 권력을 이어받았다’거나 ‘김정일이 사망 후에 김정은이 권력을 세습했다’고 각각 기술했다. 3대 세습이란 표현은 없지만 고교생이라면 ‘비정상적 국가’라는 점을 알 수 있도록 했다. 교육부가 3대 세습 문제를 가르치고 싶다면 얼마든지 검정체제 강화를 통해 실현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평가다.

또 교육부는 6·25전쟁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남북 모두에게 학살의 책임이 있거나 남한군의 학살 위주로 기술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학계에선 “고교생이라면 전쟁의 참혹함을 배워야 하고, 두 군대가 북진과 남진을 반복하면서 민간인들이 희생됐다고 알려주는 게 맞다”고 지적한다. 미래엔 교과서의 경우 ‘북한군은 함남 함흥과 전남 영광 등지에서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서술했다.

이밖에 교육부는 북한의 경제 개혁 조치인 ‘천리마운동’을 평가한 부분을 편향 서술의 사례로 들었지만 대부분 교과서들은 ‘주민 생활이 개선되지 않았다’며 비판적으로 썼다. ‘강제동원’ 부분을 강조하면서 주민들만 고생시키고 ‘산업 간 불균형’을 일으켰다고 매우 비판적으로 접근한 교과서도 있다.



‘편향·누락’도 드러나

교육부 지적이 타당한 것도 있다. 대표적으로 소련군을 ‘해방군’으로, 미군을 ‘점령군’으로 묘사한 부분이다. 비상교육의 한국사 교과서는 소련 극동군사령관의 포고문 제1호를 별다른 설명 없이 게재했다. 내용은 이렇다.

‘조선사람들이여 기억하라. 행복은 당신들 수중에 있다. 당신들은 자유와 독립을 찾았다. 이제는 죄다 당신들에게 달렸다. 붉은군대는 조선 인민이 자유롭게 창조적 노력에 착수할 만한 모든 조건을 지어주었다.’

그러면서 미군사령관인 맥아더 포고령과 비교했다.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와 조선 인민에 대한 통치의 전 권한은 당분간 본관(맥아더)의 권한 하에 시행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두고 교육부는 “미국은 1941년 12월부터 일제와 전쟁에 참전한 반면 소련은 되레 1941년부터 일본과 중립조약(불가침조약)을 맺고 있었고 우호관계에 있었다”면서 소련을 해방군으로 보는 건 무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소련군 역할을 강조하거나 동등하게 보는 것은 전적인 역사 왜곡이나 반미의식을 확대하기 위한 목적의식적 역사서술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북한의 군사 도발을 누락한 부분도 문제다. 교육부는 “상당수 교과서가 연평도 사건은 기술하고 천안함 사건은 다루지 않았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역사학자는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이므로 역사에서 다루기 어려운 부분”이라면서도 “연평도를 다루면서 천안함을 다루지 않는 건 모순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북한의 토지개혁 부분에 대해서도 “(대다수 교과서들이) 문맥상 좋은 개혁으로 오해할 수 있도록 쓰고 있다”며 뜯어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펼쳤던 각종 개혁의 폐단을 구체적으로 서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마치 북한이 남한보다 선도적으로 개혁을 했다고 오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이도경 전수민 심희정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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