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문건 유출’ 조응천 무죄… 수사팀 꾸렸던 檢 체면 손상

입력 2015-10-16 02:05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1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상기된 얼굴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지난해 12월 박관천 경정이 구속되는 모습. 박 경정에게는 징역 7년이 선고됐다. 연합뉴스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의 배후로 지목됐던 조응천(53)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정윤회 문건은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대통령기록물 유출은 중대한 범죄”라며 수사팀까지 꾸렸던 검찰은 기소의 전제조건이 인정되지 않으면서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판사 최창영)는 15일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위반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비서관의 혐의에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박관천(49) 경정에 대해선 공무상 비밀누설과 뇌물수수 혐의만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7년에 추징금 4340만원을 선고했다.

쟁점은 박 경정이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57) EG 회장에게 전달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첩보 문건 17개를 ‘대통령기록물’로 볼 수 있는지였다. 재판부는 박 경정이 전달한 문건들이 모두 원본을 추가로 출력하거나 복사한 ‘사본(寫本)’이므로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본을 모두 대통령기록물로 본다면 다수의 문서를 전부 보존·관리해야 하고, 유출이나 분실 등을 형사처벌해야 하므로 불합리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17건 가운데 정윤회 문건으로 불린 ‘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 문건을 전달한 점은 ‘공무상 비밀 누설’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문건 내용이 진실임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없으나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감찰 기능 등이 위협받을 위험이 있다”며 “비밀로 보호될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박 경정은 조 전 비서관의 지시 없이 이 문건을 박 회장 측근에게 전달하고, 2006∼2008년 유흥주점 업주로부터 뇌물로 골드바 6개를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앞서 검찰은 박 경정이 조 전 비서관 지시로 2013년 6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비선 실세 국정개입 의혹 등을 담은 청와대 내부 문건 17건을 박 회장 측에 수시로 건넸다며 지난 1월 두 사람을 기소했다. 검찰은 “1심 판결은 원본만 대통령기록물이고 같은 내용의 추가 출력·복사본은 얼마든지 유출돼도 괜찮다는 논리라 입법 취지 등에 맞지 않는다”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조 전 비서관은 선고 직후 취재진과 만나 “수사 시작 때부터 재판 내내 제가 법을 위반했다고 생각한 적 없다”며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잠시 침묵한 뒤 “없다”며 말을 아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