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deep] ‘휴대전화 보험’ 들었나요? 당신은 ‘호갱’입니다

입력 2015-10-16 02:45 수정 2015-10-16 13:18

직장인 이진형(33)씨는 최근 3년째 써오던 스마트폰을 택시에 두고 내렸다. 이동통신단말기 유통개선법(단통법) 때문에 신형 스마트폰 구입을 미뤄왔던 이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스마트폰을 장만해야 할 처지였다.

고민 끝에 3년 전 스마트폰을 살 때 분실·파손 보상 보험에 가입한 사실이 떠올랐다. 이씨는 얼른 콜센터에 전화를 했다. 그러나 “가입한 지 18개월이 넘어 분실 보험이 자동 해지됐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씨는 “이런 내용은 들어본 적이 없다. 약관 내용을 들었어도 이통사에서 정한 보험에만 가입할 수 있어 선택의 여지는 없었을 것”이라며 “이통사가 보험사와 공모해 내 주머니를 턴 기분”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씨 사례와 비슷한 불만이 늘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15일 휴대전화 보험 점검에 나섰다.

◇‘호갱’ 만드는 휴대전화 보험=휴대전화 보험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고가의 스마트폰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2009년부터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의 휴대전화 단말기 가격이 80만∼90만원대로 치솟으면서 보험 가입자도 급증했다. LG유플러스의 경우 2010년 말 48만명이던 보험 가입자가 2013년 8월에는 293만명으로 6배 이상 늘었다. 보험사들의 휴대전화 보험 손해율도 급증했다. 2008년 27.7%였던 것이 2011년 136.1%로 뛰었다. 손해율이 100%가 넘으면 보험사 입장에선 팔수록 손해다.

그러자 보험사들은 보험료 인상, 보상한도 감액, 자기부담금 인상 등 온갖 방안을 동원해 소비자 혜택을 줄였다. 혜택을 받는 기간도 파손은 24개월, 분실은 18개월로 제한했다. 손해율은 2013년 52.3%, 2014년 62.6%로 뚝 떨어졌다.

반대로 고객 불만은 급증했다. 한국소비자원에는 설명의무 위반, 대체기종 불만, 과도한 자기부담금 등의 불만이 접수됐다. 이후 제도개선이 있었지만 파손과 분실기간을 24개월로 동일하게 변경된 것에 불과했다.

새누리당 유의동 의원은 이통 3사가 제휴 보험사를 정해놔 소비자들의 보험사 선택을 제한하고 있고, 보상 규정도 소비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최근 국정감사에서 지적했다. 분실에 대한 면책 규정, 과도한 자기부담금 등에 대한 규정 등이 약관에 들어있지 않아 소비자들이 보상받기 어렵다는 지적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은 KT가 2011년 9월부터 휴대전화 보험을 자사 매출로 잡아 올 상반기까지 4230억원의 매출 신고를 했다고 주장했다. 소비자들은 보험금의 10%인 423억원의 부가세를 내야 했다.

◇공정위, 카르텔 여부 조사=끊임없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휴대전화 보험에 변화가 없는 건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통 3사는 단말기 분실·파손 보험 상품의 약관 내용을 미래창조과학부에 신고하고 있지만 통신과 금융의 융합상품이라 아직 제도적인 틀이 정립돼 있지 않다. 보험사는 금융위원회, 이통사는 미래부 소속이라 관리 기관도 제각각이고 법적인 개념도 정립되지 않았다.

2012년에는 금융위와 금융감독원, 방송통신위원회가 이통사를 빼고 휴대전화 보험 가입자와 보험사가 직접 계약하는 쪽으로 제도를 개선하려다 업계 반발로 무산되기도 했다. 당시 이통사들은 단체보험으로 저렴했던 보험료가 오른다는 점을 강조했다.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뿐 아니라 이통사들도 영업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험사도 설계사 수수료 등이 발생한다고 반대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스마트폰에서 모든 게 이뤄지는 세상인데 정부 규제는 수십년 전 만들어진 전기통신사업법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결국 공정위가 시장상황 실태 파악에 나섰다. 공정위는 지난해까지 KT, SK텔레콤과 공동으로 제휴했던 삼성화재가 올해부터 KT와 거래를 하지 않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한 손보사가 두 곳의 이통사를 점할 수 없다는 업계 불문율에 따라 삼성화재가 KT 제휴 보험사에서 떨려나간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