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9일 새벽 1시15분. 충남 태안 마검포항에는 중국 밀항을 시도하는 조희팔(생존 시 58세)씨와 일당만 있었던 게 아니다. 한 달 전부터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제보 받은 해양경찰이 잠복해 있었다. 4조원대 사기범 조씨를 현장에서 체포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조씨는 공해로 나가 중국 배에 몸을 실을 때까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았다. 재판에 넘겨진 밀항 연루자들의 판결문을 토대로 그날의 상황을 되짚어 보면 희대의 사기꾼 행방을 7년간 오리무중에 빠뜨린 건 당시 해경의 ‘결정적 헛발질’이었음이 드러난다.
태안에서 양식업을 하던 박모(48)씨는 그해 10월 알고 지내던 승려 홍모씨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수배된 기업인을 중국에서 오는 어선에 넘겨 달라는 부탁이었다. 돈은 섭섭잖게 주겠다고 했다. 고민하던 박씨는 “마약 밀매 같다”며 이를 태안 해경에 알렸다. 이때부터 박씨와 해경의 공동작전이 시작됐다. 박씨는 조씨 일당에겐 조력자인 양 행동하면서 준비 과정을 모두 해경에 제보했다.
조씨의 조카 유모(46)씨는 미리 중국에 가 밀항선을 물색했고, 홍씨 등 측근들은 밀항날짜를 정해 박씨와 작전을 세웠다. 밀항은 두 차례 실패했다. 11월 10일 첫 시도 때는 중국 배가 접선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11월 20일에는 파도가 높아 그냥 돌아왔다. 마약밀매 현장을 덮치려 잠복했던 해경도 그냥 철수했다. 박씨도, 해경도 이게 밀항시도였음을 몰랐다.
3차 시도는 12월 9일이었다. 조씨 일당은 배가 느리다며 ‘업그레이드’를 요청했고, 박씨는 고속모터를 추가로 장착했다. 유씨는 헤이룽장성 조선족의 소개로 30t급 어선을 확보했다. 최측근 강태용씨는 중국에서 조씨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해경은 이날 마검포항에 다시 잠복했다. 조씨를 태운 박씨의 배는 이튿날 오전 7시 서해 격렬비열도에서 60마일 떨어진 공해에 도착했다. 그곳에 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 어선에 올라탄 조씨는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박씨 배가 마검포항에 돌아오자 해경의 검거작전이 시작됐다. 부두에서 기다리던 홍씨 등 측근, 조씨와 함께 배에 탔던 최모씨 등이 체포됐다. 정작 ‘몸통’ 조씨는 놓치고, 나머지 일당만 붙잡은 것이다. 해경은 박씨 배에서 조씨가 버리고 간 여권을 발견하고야 밀항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조씨가 이미 경찰 수배명단에 올라 있던 점을 감안하면 해경이 단순 마약밀수로 판단했다는 점은 여전히 의문이다. 이듬해 1월 태안해양경찰서장은 직위해제됐다.
검찰은 일당을 기소하면서 애꿎게 제보자 박씨와 그를 도운 선장 채모씨도 구속 기소했다. “두 사람이 마약사건인 것처럼 제보한 뒤 조씨가 밀항할 수 있게 도왔다”고 주장했다. 반면 법원은 “밀항을 도우려 했다면 애초 해경에 제보할 이유도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불복한 검찰이 두 차례 상소했지만 대법원은 2010년 무죄를 확정했다. 홍씨와 유씨는 징역 1년, 나머지 일당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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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0-16 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