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에 펼쳐진 전위예술 大家들의 세계… 김구림·이건용·성능경 ‘동거동락전’

입력 2015-10-16 02:50
한국 전위예술 1세대 작가들을 초청한 ‘동거동락전’이 서울 남산골한옥마을에서 14일 개막했다. 이건용, 김구림, 성능경 작가(왼쪽부터)가 김 작가의 설치작품 앞에서 포즈를 하고 있다.남산골한옥마을 제공

민영휘는 명성황후의 조카로 한성판윤, 이조판서 등 요직을 지냈다. 구한말 권문세가였던 그의 대저택은 마루 밑에 뚫려있는 벽돌 통기구 등 당시 일반 가옥과 다른 최상류층 주택의 면모를 보여준다. 서울 남산골한옥마을에는 민씨가를 비롯해 오위장 김춘영의 단출한 한옥, 궁궐을 지었던 대목수의 단단한 한옥 등 근대화와 함께 사라질 뻔한 전통 한옥 5채가 보존돼 있다.

이곳에서 현대미술 거장 3인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주인공 김구림(80)·이건용(74)·성능경(72) 작가가 1960∼70년대 한국 현대미술을 이끌던 1세대 전위예술가라는 점에서 뜻 깊다. ‘동거동락전’이라는 타이틀로 모인 역전의 용사들은 각각 마당이나 한옥 한 채씩을 전시공간 삼아 설치, 회화, 드로잉, 퍼포먼스 등을 선보이고 있다. 작품이 미술관이라는 갇힌 공간을 떠나 일상 건물 속으로 들어오는 일은 다반사가 됐지만 백여년 숨결이 밴 고택에서의 전시는 흔치 않다.

한국 현대미술 최전선에서 장르의 해체를 추구해온 김구림 작가는 마당을 골랐다. 바다처럼 펼쳐져 있는 거대한 아크릴판 위에 기울어진 배가 한 척 있다. 사람 대신 해골이 앉아 있는 설치 작품은 시적 여운을 던진다. 개막일인 14일 만난 작가는 “전통과 현대를 포용할 수 있는 작품을 하기 위해 고민했다. 풍랑을 만난 어부의 죽음일 수 있고, 내전을 피해 새 삶을 찾다 바다에서 탈출한 시리아 난민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건용 작가는 순종황제 비 순정효황후의 큰아버지 윤덕영이 소유했던 가옥에 트레이드마크인 ‘신체 드로잉’ 등을 설치했다. 캔버스를 등 뒤에 두고 붓을 휘둘러 만들어내는 흔적이 역동적이다. 아울러 2013년 보스턴마라톤 폭발 테러, 세 살 배기 시리아 난민 쿠르디 사망 등 지구촌을 울린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폭발과 피난민과 동거시대’라는 제목으로 대청마루, 부엌, 안방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오위장 김춘영이 살았던 가옥 곳곳에는 성능경 작가가 ‘사색당파-특정인과 관련 없음’이라는 제목으로 사진을 이용한 작품을 걸었다. 미디어에서 찾은 정치인, 일반인, 연예인 등의 사진을 사용하고 이들의 눈을 사색을 상징하는 빨강, 파랑, 초록, 보라색 띠로 가린 작품이다. 박근혜 대통령 사진 등을 찾을 수 있다. 1977년 작인 ‘특정인과 관련 없음’을 버전 업했다. 조선말기 사색당파와 연결지어 소통 불가능 시대에 대한 유감을 표현한 것이다. 성 작가는 이날 저녁 작가와의 대화 때 노구 임에도 물구나무를 서서 “예술의 지평은 확장되어야 한다”는 요지의 선언문을 읽는 퍼포먼스를 해 관객을 놀라게 했다.

전시를 기획한 김노암 감독은 “남산골한옥마을은 중국인, 일본인을 포함해 연 2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전통 가옥과 함께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한국 현대미술의 시원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무료이며, 11월 9일까지(02-2261-0511).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