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팔 살아 있나] 조희팔 사기 피해자 3인 인터뷰 “평생 모은 돈 날려… 7년 속앓이”

입력 2015-10-16 02:11
조희팔 사기사건 피해자들이 15일 서울 구로구의 ‘바른 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 사무실 옥상에서 김미현 사무국장(가운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년만, 1년만 하다가 벌써 7년이….”

그동안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와 헤어졌다. 더 이상 친구들도 만나지 않는다. 고향인 제주도에서 2006년 서울에 온 최모(43·여)씨는 친구의 권유로 1억2000만원을 의료기구 대여업체에 투자했다. 2007년 겨울이었다. 투자를 권유했던 친구는 매일 돈이 들어오는 통장을 보여주며 최씨를 유혹했다. 회사에도 직접 가봤다. 활기찼고, 믿을 만한 곳 같았다.

그런데 1년도 되지 않은 2008년 10월 일이 터졌다. 매일 40만∼50만원씩 들어오던 돈이 갑자기 끊겼다. 투자를 권유했던 친구는 “끝났다”고만 했다. 결혼자금에 친구 돈까지 빌려 투자했던 최씨는 “소리도 지를 수 없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고 그날을 떠올렸다.

최씨는 오피스텔을 정리하고 3평 남짓한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고향으로 갈 수는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에게 딱히 설명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부모는 지금도 딸이 사기당한 사실을 모른다. 그는 “당신 딸이 그 유명한 조희팔 사기사건의 피해자라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최씨는 작은 회사에서 사무보조로 일하며 1주일에 한 번씩 피해자모임 ‘바른 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바실련)에 나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남아 있는 빚은 4000만원. 최씨는 조희팔 사기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면 고향에 내려가겠다고 했다.

어디에다 알리지도 못하고 혼자 속앓이를 한 건 최씨만이 아니다. 자영업자 이홍택(63)씨는 2008년 1월 2억5000만원을 투자했다가 몽땅 날렸다. 모든 게 사기였다는 말을 들은 날, 도무지 집에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답답한 마음에 혼자 가게에 남아 인터넷을 검색하며 밤을 지새웠다. 익숙하지 않은 인터넷으로 조씨의 행적을 찾기도 하고, 비슷한 피해사례를 알아보기도 했다. 2시간이 넘게 걸려 피해자들이 만든 인터넷 카페에도 가입했다. 이씨는 “아내에게 사실대로 얘기했지만 차마 아이들에게는 말할 자신이 없었다. ‘아버지는 사기 피해자다’라고 밝히는 데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저 세상에 있는 남편은 아직도 몰라.” 유모(51·여)씨는 2008년 6월 남편 몰래 1억8000만원을 투자했다. 사기당한 사실을 알고 나서야 ‘노후자금’을 모두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간경화로 건강이 좋지 않던 남편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순 없었다. 남편은 아무것도 모른 채 2009년 세상을 떴다. 유씨는 아직도 사기당한 생각만 하면 자괴감에 빠져든다고 했다. 지금까지 갚지 못한 빚 5000만원은 집을 팔아 갚을 예정이다.

서울 구로구 바실련 사무실에서 15일 만난 피해자들은 억장이 무너지는 세월을 겨우 버티고 있었다. 조씨의 최측근인 강태용(54)씨 송환을 앞두고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유씨는 “누가 돈 먹은 놈인지 모르니 경찰도 검찰도 못 믿겠다”며 “죽었다는 것도 사기 아니냐”고 했다. 이씨는 “조희팔을 만나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 모든 것이 밝혀져 이 고통에 종지부를 찍고 싶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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