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김재중] 박원순의 대망론

입력 2015-10-16 00:30

박원순 서울시장에게는 항상 ‘유력한 야권 대선주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래서 언론 인터뷰나 공식석상에서 기자들로부터 2017년 대선에 출마할 것이냐는 질문이 쏟아진다.

박 시장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당시 투명한 정보 공개와 신속한 대처로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한 여론조사에서는 6월 둘째 주 대선주자 지지율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최근엔 새정치민주연합의 복잡한 내부 사정과 맞물리면서 그의 행보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한 그의 답변은 정해져 있다. ‘서울시장으로서 시정에 전념하겠다’는 것. 그렇다고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긍정도 부정도 아닌 모호한 화법이다. 이러한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화법은 미 중앙정보국(CIA) 등 정보 당국이 기밀 유지가 필요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사실 확인을 요청받을 때 주로 쓰는 표현이다.

정치권에서는 향후 사정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말 바꾸기를 하지 않으면서도 대선 출마 가능성을 열어놓는 고도의 정치적 화술로 활용된다. 새누리당 소속 김문수 전 경기지사도 2012년 대선 때 당내 경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비슷한 입장을 견지했었다.

박 시장은 지난달 9일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세미나에서도 중견 기자들이 집요하게 그의 대선 출마 여부를 따져 물었으나 “절대 유도질문에 넘어가지 않는다”면서 피해갔다.

곁에서 지켜본 박 시장은 누구보다 ‘권력의지’가 강하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산행에서 돌아와 당시 50%가 넘는 높은 지지를 받던 안철수 의원과 만나 담판을 벌일 때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혀 안 의원의 불출마를 이끌어낸 대목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최근 아들 병역과 관련한 일부의 문제 제기에 괴로운 심정을 토로하면서도 대선 출마 의지를 꺾지 않았다. 본인만 대선 불출마를 선언해도 가족들이 혹독한 검증을 피할 수 있는데 말이다.

이를 종합해볼 때 대선 출마 의사를 갖고 있는 게 분명하다. 다만 2018년 6월까지 임기가 2년 반 이상 남은 상황에서 19대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히는 순간 ‘레임덕’(권력누수)이 불가피해진다. 서울시의 많은 조직과 직원들의 충성도가 떨어질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서울시장 3선 도전 가능성을 열어놓음으로써 조직을 추스르고 분위기를 다잡겠다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박 시장이 대선 출마 여부를 밝히는 시점은 내년 총선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연합이 문재인 대표를 중심으로 총선을 치른다고 전제할 때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문 대표가 대선주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총선에서 참패할 경우 문 대표는 사퇴 압력에 직면하고 대선 후보로 나서기도 어렵게 된다. 그렇게 되면 새정치연합은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고 정치권의 이목은 자연스럽게 박 시장에게 쏠릴 것이다.

그렇더라도 박 시장의 고민은 남는다. 여론 지지도는 높지만 당내 기반이 약한 그로서는 경선에 대한 부담이 있고, 특히 최대 계파인 친노(親盧) 진영의 견제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정치연합이 그를 대선 후보로 추대하거나 당내 경선에서 압승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돼야 대선 출마를 선언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박 시장이 대선 경선에 출마하더라도 시장직은 유지할 것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경선 패배 시 시장 3선에 도전해 차차기 대선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재중 사회2부 차장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