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김병삼] 해석인가 왜곡인가

입력 2015-10-16 00:20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여러 출판사에서 나오는 민간 교과서를 검증하는 방식이 역사를 편향적으로 만들었다는 인식에서 시작되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타당성은 역사적 편향에 근거한 현 교과서를 바로잡고 미래지향적이고 국민통합을 추구하는 긍정적 역사관에 입각한 현대사를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발하는 단체들에 의하면, 역사는 해석의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정화’ 시도는 국민을 하나로 통제하려는 불순한 의도와 친일과 유신독재를 미화하거나 희석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의 주장도 순수한 역사적 인식을 위한 논쟁으로 보기는 어렵다. 대한민국 근대사에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역사적 정통성이 없다는 것은 우리에겐 비극이다. ‘정통성’이라는 가드레일이 없는 역사적 논쟁은 ‘해석’이라는 이름으로 학문적 논쟁이 되지 못하고 서로를 향해 ‘왜곡’이라는 말로 비난하는 이념적 정쟁이 되어 버렸다.

그러면 ‘왜곡’과 ‘해석’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역사의 재해석은 역사적 사실을 해석할 때 어떤 사람의 판단에 크게 좌우되는 경우다. 하지만 ‘왜곡’은 ‘사실’을 전혀 다르게 기록해서 무엇을 변호하거나 헐뜯는 것을 말한다. 왜곡은 역사가 통치적 논리로 수단화될 때 나타날 수 있는 위험성이다. 사실을 해석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바꾸려는 시도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E H 카는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역사의 해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엄밀한 의미에서 순수하고 객관적인 역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한 사건을 기록하는 순간 그 사람의 해석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해석의 범위는 정통성과 정체성 안에서 안전하다. 하지만 그 범위를 벗어나는 순간 ‘왜곡’이 일어난다.

성경에도 역사를 보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하나의 관점은 이스라엘 역사를 연대기적 관점으로 서술한 왕들의 이야기인 ‘역대기서’에 나타난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택하심에 근거한 다윗왕가를 중심으로 한 ‘열왕기서’에 있다. 이 역사는 ‘신명기 사관’이라 부르는 역사적 서술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근거한 관점에서 이스라엘 역사를 보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민사상’을 주었다. 성경에서 같은 이스라엘 왕의 이야기를 두 가지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러나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하지만 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견지하는 역사적 관점이 있다. 이러한 역사 인식을 ‘신명기사가적’이라고 부르는데, 성경의 저자가 철저하게 이스라엘 왕가의 통치를 ‘신정통치’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성경은 인간의 다양한 역사를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보게 한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를 보게 될 때 현재는 미래를 조명한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이스라엘은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고난을 견뎠고, 미래를 살아갈 힘을 얻은 것이다. 따라서 역사는 끊임없이 현재와 대화해야 한다.

건국 70년을 맞은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역사적 ‘정쟁’이 아니라 역사적 ‘대화’다. 아직도 과거의 역사를 현재에서 해석할 국민적 합의와 대한민국 정통성에 대한 모호함은 이 시대를 사는 국민이 가진 비극이다. 더욱 불행한 것은 역사 논쟁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헛된 바람일지 모르지만 하나님과 교회의 이름으로 더는 크리스천들이 소모적 역사 논쟁에 편승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통전적 시각으로 현재를 보았으면 좋겠다. 크리스천들이 내놓아야 하는 역사적 사명이 있다. 대한민국을 향한 신명기사가적 통찰이 그것이다.

김병삼 만나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