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혐오 바이러스

입력 2015-10-16 00:20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로부터 문자가 온다. 별 일 없니? 응. 너는? 잘 지내. 너도? 나도 잘 지낸다고 답을 보내려다가 잠시 망설인다. 정말 잘 지내고 있는 건가? 그래, 그렇다고도 할 수 있겠지. 친구와 나는 안부를 주고받지만, 그 속에 구체적 정보는 없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귀찮은 것 같기도 하고 두려운 것 같기도 하다. 길고 투명한 촉수를 내밀어 서로를 더듬다가 그냥 미끄러지고 마는 삶.

언젠가부터 내 마음은 차갑고 뾰족해져간다. 가족, 친구, 나와 가까운 사람,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 눈에 띄는 모든 사람의 행동과 말이 눈에 거슬리고 귀에 거슬린다. 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잠재적 살인자다. 굶어 죽더라도 돈을 빌렸으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 뚱뚱한 사람이 레깅스 같은 옷을 입는 건 민폐다. 전동차 문이 열리자마자 어깨를 부딪치면서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살의를 느낀다. 여자들부터 군대에 보내서 정신 차리게 만들어야 한다. 끝까지 책임질 생각 없으면 고양이 밥 주지 말라. 교통사고는 매일 일어나는데 배 한 척 침몰했다고, 사람은 누구나 죽을 운명인데 아이들이 죽었다고 슬퍼해야 하다니, 착한 척하는 거냐. 잘난 척하는 거냐.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고 또 주위에서 떠돌아다니는 말들이다.

돌덩이가 된 마음과 얼어붙은 혈관을 비집고 나오는 말들. 나는 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증오와 혐오, 경멸과 조롱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다.

치료약이 있다면, 뜻하지 않게 받은 크리스마스선물 같은 선의일 것이다. 내가 당신의 가족이고 친구이고 직장 동료라서 얻을 수 있는 이득 말고,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호의나 회계장부 속에 기록해둘 친절 말고. 이따금 나의 깔끔한 합리성을 무너뜨리고 싶다. 타인의 작은 허물에 눈 감는 어수룩함. 살다보면 어느 정도 손해는 어쩔 수 없다는 체념. 햇빛이나 바람처럼 목적 없이 흩어지고 퍼져나가는 선량함. 그런 마음들 없이 내가 잘 지낼 수 있을까.

부희령(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