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바쁘게 사는 것이 인생을 알차게 사는 것으로 생각했다. 빼곡하게 채워진 일정표를 보면 나름 흐뭇해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동안 지내다보니 지친다. 이제는 일정을 채우는 만큼 쉼과 운동을 채워야 하는데 쉬지도 않고 운동도 안하니까 벌어지는 현상이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다중작업(멀티태스킹)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여러 일처리를 한 번에 같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도 알게 모르게 다중작업을 꽤 많이 한다. 운전을 하면서 음악을 청취하는 건 기본이고 중간 중간 전화통화도 하고 내비게이션도 조정한다. 문명사회에서는 다중작업을 잘해야 성공한다.
나의 다중작업에 문제를 느낀 것은 작년부터이다. 매일 복용하는 약이 있는데 보통은 오전 근무를 하는 중간에 먹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부터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를 않는 것이다. 기억을 신뢰할 수 없어서 달력에 표시를 시작했는데 먹으면서 바로 표시를 하지 않으면 표시를 해야 할지 말지도 가물가물한 상황이 나타나 난감했다. 주로 노인들이 쓰는 사각약통을 왜 쓰는 지도 이제 알겠다.
이제 40대 말에 불과하지만 나의 기억력은 이렇게 한계에 왔다고 생각을 해오다가 최근에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오전 근무 중에 먹던 투약습관을 아침에 일어나서 먹는 것으로 바꾼 것이다. 우연하게 그렇게 했는데 놀랍게도 약을 먹었는지 여부가 보다 명확하게 기억이 났다. 기억 기능이 전만 못한 것은 똑같지만 다중작업의 상황이 아니라면 기억 기능이 비교적 잘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 사실을 경험하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다니!
윌로우크릭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가 쓴 책에서 이러한 내용이 나온다. 하루는 아버지와 함께 엄청난 양의 건초더미를 옮기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빌은 아버지에게 언제 이것을 다 옮기냐고 물었는데 아버지는 “한 번에 하나의 건초더미를 옮기면 된단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다중작업은 시간을 단축할 수 있으나 오류가 잦다. 컴퓨터도 다중작업 중에 멈춰버리는 경우가 있다. 우주선에 들어가는 컴퓨터는 생각보다 느린 대신 정확하다고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이 “빨리 빨리”를 좋아하지만 그게 대부분 속도보다는 다중작업을 요구하는 것인데 오류가 생기면 결과적으로 토끼와 거북이 경주처럼 오히려 더 느려질 수도 있는 것이다.
거북이처럼 우직하게 한 번에 하나의 일만 하면서 지내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미련하다”고 말한다. 그들이 미련한 게 아니라 세상이 너무 빨리 돌아가고,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처리하려고 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김구 선생님의 세 가지 소원처럼, 우리 선진과 선배들 중에는 독립을 위해서, 민주화와 사회 정의를 위해서 그 한 길을 외롭게 간 분들이 있다. 우리가 그들의 노고를 인정한다면 시간이 더 지체되도록 방해를 말았으면 좋겠다. 물론 그들은 꾹 참고 계속 가겠지만 말이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 3:13∼14)
최의헌<연세로뎀정신과의원>
[최의헌의 성서 청진기] 다중작업(멀티태스킹)
입력 2015-10-17 0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