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선구 최화자 부부] 행복하여라, 나누고 베푸는 노년의 때여

입력 2015-10-17 00:04
이선구 장로 최화자 권사 부부는 1960년대 파독 광부·간호사로 나갔다 미국으로 이민했다. 부부는 신앙으로 세 아들을 글로벌 리더로 키웠다.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 축복이 아닌 것이 없다”는 부부는 여생을 하나님과 조국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1일 충남 당진의 한 성지 앞에서.
그리스 단기선교 중 카테리나 교회를 방문한 이선구 장로 부부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조숙희 그리스 선교사.
집시 아이와 포즈를 취한 부부.
그리스-마케도니아 국경에서 시리아 난민 등을 위해 구호 물품을 나눠주는 이 장로 부부.
그리스 카테리나 교회에서 기도하는 이 장로.
파독 광부·간호사 출신으로 ‘유럽 난민’에게 구호 물품을 나눠주던 미국 교포 이선구(76) 장로 최화자(72) 권사 부부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달 중순 그리스-마케도니아 국경에서였다. 부부는 그리스-마케도니아 국경만이 아니라 마케도니아-세르비아 국경에서도 전쟁의 참화를 피해 독일로 향하는 시리아 난민 등에게 손전등과 여성용품 등 긴급 구호 물자를 제공하고 있었다. 연금을 아껴 나선 자비량 선교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난민 행렬 속에서 초로의 동양인 부부가 구호 활동을 벌이는 모습은 감동을 넘어 경건하기까지 했다(국민일보 9월 14일자 3면 참조).

그 부부를 지난 주일 충남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에서 다시 만났다. 지난달 20일, 두 달간의 난민 단기 사역을 마치고 그리스에서 귀국한 부부는 임시 거처인 이곳의 한 아파트에 머무는 중이다. 부부는 1960년대 광부·간호사 근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이민, 평생 시카고 한인교회를 섬겼다. 그리고 은퇴 장로·권사가 됐다. 부부는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에게 주신 축복을 조금이나마 갚고자 가난했던 시절 떠났던 조국을 다시 찾았다”고 말했다.

부부는 요즘 아산에서 다문화가정 탁아 사역을 두고 기도 중이다. 러시아 등에서 시집 온 여성 등이 한국어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아이를 돌봐주고 싶어서다.

최 권사는 “이곳 교회 성도 가운데 한 분이 주축이 되어 ‘한국어교실’을 운영하는데 막상 수업에 참여한 이주여성들이 아이 때문에 수업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아이들을 돌봐주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며 “우리도 독일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울 때 이들과 같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부부의 인생은 올 초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영화 ‘국제시장’이라고 보면 된다.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나 광복과 6·25전쟁을 겪고 가난에 시달렸던 부모세대. 영화 속 덕수(황정민 분)와 영자(김윤진)의 삶과 로맨스를 이선구와 최화자로 이해하면 된다. 다만 화자는 영자와 달리 한국에서 정식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도립병원에 근무한 정식 간호사라는 점이다. 또 하나.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신앙인이었다.

신앙

이 장로는 충남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서 성장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교회가 들어섰다. 하나님의 존재를 이때 알았다. 그가 아홉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3남1녀는 늘 가난에 시달렸다.

“어느 날 어머니가 친정(서천군 장항읍) 다녀오던 길에 만난 거지 소년이 불쌍하다며 집에 데려와 먹이고 입히는 겁니다. 저는 그 녀석이 죽도록 미웠어요. 결국 우리 형편이 감당을 못해 몇 개월 만에 돈과 먹을 것을 챙겨주어 녀석의 고향 전라도로 보냈어요. 그 후 교회에서 기도할 때마다 그 녀석이 머릿속에서 왔다 갔다 해요. 오랜 동안 그랬어요. 세월이 지나서 깨달았어요. 아, ‘그 녀석’이 다름 아닌 예수님이셨구나….”

이 장로는 가난 때문에 상급학교 진학이 어려웠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또 군에 가서는 술도 마시며 세상과 타협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사랑했고, 그 또한 사단의 유혹을 슬기롭게 극복했다.

최 권사는 대전중앙교회를 중심으로 한 4대를 잇는 모태신앙이었다. 교육자였던 아버지가 6·25 때 숨지자 가세가 기울었다. 어머니와 두 딸만 남기고서였다. 최 권사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강인한 여성 스칼렛 오하라처럼 살았다.

만남

이 장로는 고시 공부를 했다. 최 권사는 충남도립병원 간호사로 재직했다. 그러다 서독(현 독일) 광부·간호사 공모에 도전했다. 경쟁률이 높았고 소위 ‘빽’을 써서 나가는 이도 적잖았다. 이 장로는 65년 6월 김포공항∼방콕∼뒤셀도르프 여정을 밟았다. 최 권사는 66년 1월 김포공항∼도쿄∼프랑크푸르트 코스였다. 둘은 각각 단벌 신사복과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태극기를 든 채 비행기를 탔다. 이 장로 모친은 신작로까지 따라 나와 울었다. 최 권사 모친은 대전여중(6년제)을 2등으로 입학한 재원인 딸이 먼 나라에 돈 벌러 가는 것을 서러워했다. 가난한 조국에서 태어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들은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탄을 캐고, 8∼9척 장신 이방인을 눕히고 일으켜 세워 주사를 놓으며 돈을 벌었다. 그리고 조국으로 송금했다. 논산 어머니는 논을 샀고, 대전 어머니는 교육비와 딸들 시집보낼 곗돈을 만들었다.

“저는 뒤셀도르프 인근 메르크스타인이란 지역에서 일했습니다. 유일한 위로가 소모임 형식으로 이뤄지던 예배였어요. 지금은 구순이 되신 이영빈(통일운동가·프랑크푸르트 거주) 목사가 파독 광부·간호사를 위해 순회 설교를 하셨어요. 위로 받고, 눈물 흘리고, 간구하고…. 이 목사님 부부가 큰 힘이 되어 주셨죠.”

이 장로의 얘기다. 이영빈 목사는 65∼69년 3000여명의 파독 광부, 4000여명의 파독 간호사 등에게 영의 양식을 먹였다. 또 독일 노동법을 공부해 그들의 권리를 지켜주었다.

‘일 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전 9:9)인 배우자의 인연은 고춧가루를 통해 이뤄졌다. 프랑크푸르트 병원에 근무하던 최 권사의 후배 간호사가 메르크스타인에 있는 친척 광부에게 한국에서 온 고춧가루를 전해야 했다. 최 권사가 동행했다. 이 고춧가루를 받으러 어느 휴일에 메르크스타인에서 ‘그 친척’과 이 장로가 함께 왔다. 기차로 3∼4시간 거리였다. 자연스럽게 그들은 어울리게 됐다. 선남선녀 이선구와 최화자는 서로 신앙인인걸 알고 급격히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 먼 거리를 오가며 사랑을 나누었고 낯선 땅에서 결혼을 했다. 주례는 이 목사였다.

자녀

아들이 태어났다. 큰아들 존 리(47·미 연방법원 종신판사)였다. 부부는 기도로 얻은 아이를 기도로 키웠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주말부부였던 까닭에 탁아를 해야 했다. 낯선 땅, 낯선 언어, 불안한 미래였다. 최 권사의 얘기.

“당시 우리 가정이 요즘 한국사회 일원이 된 다문화가정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큰아들이 갓난아기였을 때 재독 미국인 가정에 아기를 맡겨야 했어요. 그러나 육아 방식이나 언어 문제 등 어려움이 많아 결국 그 어린것을 한국의 외할머니에게 보내야 했어요. 그리고 미국 이민 가서야 데려올 수 있었죠. 언어 문제는 우리 부부에게도 큰 산을 마주한 것처럼 막막한 것이었어요. 지금 한국사회에 우리가 처했던 상황에 놓인 이주노동자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탁아와 언어 교육으로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거죠.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보겠습니다.”

독일과 미국에서 ‘이방인’이었던 부부는 세 아들을 글로벌 리더로 키웠다. 존 리(한국명 지훈)는 하버드대를 졸업했고, 둘째 대니얼(37·지석)은 스탠퍼드대를 나와 디자인과 IT를 접목시킨 세계적 컨설팅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또 셋째 데이빗(32·지상)은 사립 명문 노스웨스턴대에서 국제경제를 전공했다. 청소년 복음화에 관심이 많았던 데이빗은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에서 더 공부했다. 지금은 고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파트타임 전도사로 활동 중이다. 삼형제의 아내는 각기 신앙을 가진 의사, 컴퓨터사이언스 전문가, 미국 감리교신학대 신학생이다.

노년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정하니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시 92:14∼15)

부부는 20대 이후 디아스포라가 되었다. 어머니와 조국이 늘 그리웠다. 어딜 가나 교회가 어머니와 조국이 되어주었다. 그런 부부는 세 아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키운 후 자신들이 받은 은혜를 세상에 천배 만배로 되돌려 주겠다고 서원했다.

때문에 부부는 그리스 단기 선교 중에 만난 ‘유럽 난민’, 모국에서 만난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빌 4:7)의 영적 메시지임을 알고 있다.

동방의 가난한 나라 한국에서 온 파독 광부·간호사는 이제 70대 노년이 됐다. 그러나 한 번도 자신들이 노년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는 ‘청년의 때’일 뿐이다.

아산=글·사진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