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이메일 얘기 지겨워… 진짜 토론하자” ‘힐러리 아킬레스건’ 안 건드린 샌더스에 환호

입력 2015-10-15 03:52
13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윈호텔에서 CNN방송 주최로 열린 2016년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1차 토론회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왼쪽)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당내 여론조사 수위를 달리는 두 후보는 이날 총기규제와 시리아 문제, 월가 규제 등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AP연합뉴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13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민주당 첫 대선 경선 TV토론에서 관록과 여유로 토론을 주도, 자신이 왜 선두주자인지를 입증하면서 ‘대세론’의 화려한 귀환을 알렸다. 당내 여론조사 1, 2위를 달리는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첫 TV토론에서 양보 없는 설전을 주고받았지만 현지 언론들은 클린턴의 ‘압도적 승리’였다고 평가했다.

이렇다 할 한방을 보여주지 못하고 ‘주춤’한 샌더스였지만 경쟁자 힐러리를 두둔하는 ‘쿨’한 발언은 이목을 끌었다. 샌더스는 클린턴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이메일 스캔들에 대해 사회자의 질문이 이어지자 “미국인들은 ‘그놈의 이메일’을 듣는 데 염증이 난다”고 말해 클린턴을 놀라게 했다. 이날 TV토론의 반전이었다.

CNN 주최로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1차 TV토론은 클린턴과 샌더스가 주도했다. 마틴 오말리 전 메릴랜드 주지사와 짐 웹 전 상원의원, 링컨 채피 전 로드아일랜드 주지사 등 나머지 3명은 거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조 바이든 부통령은 이날까지 출마선언을 하지 않아 토론에 참여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2차 TV토론은 다음 달 14일 아이오와에서 열린다.

◇클린턴, 총기규제 놓고 샌더스 공격=클린턴은 샌더스가 총기규제에 너무 미온적이라고 공격했다. 샌더스가 1993년 당시 신원조회를 통과한 사람에게만 총기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브래디법’의 통과를 다섯 차례나 반대했다는 것이다. 클린턴은 “총기 폭력으로 매일 90명이 목숨을 잃고 있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며 “이제는 나라 전체가 전미총기협회(NRA)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샌더스는 “합법적으로 총기를 파는 상점에서 누군가 총기를 사서 미친 짓을 저질렀다면 그 상점이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하느냐”며 “범죄자에게 총기를 파는 상점에 대해서는 분명한 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나 잠재적 폭력성을 가진 사람이 총기를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받아쳤다. 샌더스는 상원의원 선거에서 총기규제를 주장하는 상대 후보를 집중 공격해 NRA의 간접지원을 받았다.

◇샌더스,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에 면죄부=이날 토론 초반부터 클린턴에게는 이메일 스캔들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이 쏟아졌다. 개인 이메일에 국가기밀을 저장하고 관리한 것은 위기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국가지도자로서 신뢰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클린턴은 ‘최선은 아니었고 실수였다’는 기존의 해명을 반복했다.

이때 샌더스가 나섰다. 경쟁자의 약점을 물고 늘어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샌더스는 클린턴을 감쌌다. 그는 “미국인들은 그놈의 이메일을 듣는 데 염증이 난다”며 “미국은 중산층의 붕괴, 임금 불평등, 고장 난 사법체계 등 더 중요한 도전과제가 많이 있다”고 말해 청중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샌더스 옆에 있던 클린턴은 “나도 마찬가지”라고 크게 웃으며 샌더스에게 악수를 청했다.

◇클린턴은 ‘표리부동’, 샌더스는 ‘사회주의자’ 공격받아=사회를 맡은 CNN 앵커 앤더슨 쿠퍼는 선거 유불리에 따라 입장을 수시로 바꾸는 클린턴의 정치적 표변을 물고 늘어졌다. 가령 국무부 장관 시절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앞장서서 추진했다가 출마 선언 이후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 세력인 노조 등의 비판에 직면하자 TPP 반대로 입장을 바꾼 것은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약속하는 ‘표리부동’의 자세라는 비판이었다. 이에 클린턴은 “나는 평생 일관된 원칙을 갖고 살아왔다”며 “TPP가 미국인에게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신의 ‘원칙과 기준’에 못 미쳤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해명했다.

샌더스는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후보가 대통령선거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내가 말하는 민주적 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는 미국의 상위 1%가 90%의 부를 독점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