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쌀농사가 풍년이다. 그러나 정부와 농민 모두 웃지 못하고 있다. 쌀 소비가 갈수록 줄어 농민은 쌀값 폭락이 걱정이고, 정부는 재고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통계청은 올해 쌀 예상 생산량이 425만8000t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14일 밝혔다. 평년 생산량(396만t) 대비 7.5% 늘었고, 대풍년이었던 지난해보다도 0.4% 증가한 수치다. 올해 벼 재배면적이 사상 최초로 80만㏊ 밑으로 떨어지면서 재배면적은 전년 대비 2% 줄었지만 일조량 증가 등 양호한 기상여건 영향으로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쌀 생산량에 반해 소비량은 감소 추세다. 지난해 1인당 평균 쌀 소비량은 65.1㎏으로 1년 전보다 3.1% 감소하는 등 매년 줄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고육지책으로 어린이집 영·유아를 대상으로 식생활 습관 교육을 실시키로 했다. 어릴 때부터 밥 먹는 습관을 가르치자는 취지다.
이처럼 쌀이 남아도는 현실에서 풍년은 곧 재고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이달 현재 정부가 관리하는 쌀 재고량은 132만t이다. 비상사태에 대비한 적정 재고량 80만t은 이미 훌쩍 뛰어넘었다. 한 해 쌀 소비량이 평균 400만t인 점을 감안하면 올해 생산되는 쌀 426만t 중 30만t 정도는 다시 창고에 쌓일 처지다. 농식품부는 지난해에도 쌀값 하락 방지를 위해 24만t을 비축 물량으로 수매했다. 여기에 쌀 관세화 연장에 따라 매년 40만t의 외국 쌀까지 의무적으로 수입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쌀 10만t을 보관하는 데 드는 비용은 연간 316억원이나 된다. 4000억원 이상의 예산이 단순히 재고 관리로 없어지는 셈이다. 농식품부 내에서는 인도적 대북 쌀 지원을 재개하지 않는 이상 답이 없는 상황이라는 하소연마저 나오고 있다.
농민들 역시 쌀값 하락을 걱정하고 있다. 지난해 17만원대(80㎏ 기준)를 유지하던 쌀값은 현재 15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각 시·도 농민단체들은 최근 “수확기를 앞두고 생산비도 보장받지 못할 위기에 처해 있다”며 정부에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는 수확기 쌀 수급안정 추진 방안을 조만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초 쌀 예상 생산량 통계 발표일에 맞춰 내놓을 예정이었지만 기획재정부와의 예산 협의가 지연되면서 미뤄졌다. 그러나 농식품부의 올해 대책 역시 미곡종합처리장(RPC) 등 민간 업체의 벼 매입 확충, 시장 격리용 매입 등으로 매년 나오는 것과 별 차이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재고미를 사료용으로 쓸 수 있게 하거나 대북 지원 재개 등 근본적인 쌀 재고처리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해마다 남아도는 쌀 어쩌나… 들녘은 풍년, 농심은 흉년
입력 2015-10-15 0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