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태풍기담’ 무대 올리는 성기웅] “반성·정리 안된 韓日관계 용서·화해 말할 수 없었다”

입력 2015-10-15 02:27
연극 ‘태풍기담’ 공연을 앞둔 극작가 겸 연출가 성기웅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그는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인 올해 ‘신모험왕’과 ‘태풍기담’ 등 양국 합작연극 2편을 만들었다.최종학 기자

올해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지만 양국 관계가 좋지 않다 보니 공식적인 문화예술 교류는 크게 축소됐다. 그럼에도 민간 차원에서는 꾸준히 교류가 이어졌다. 특히 연극계에서 극작가 겸 연출가 성기웅(41)은 주목할 만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극단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를 이끄는 그는 일본 극작가 겸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와 같이 ‘신모험왕’을 지난 6∼7월 양국에서 선보인 데 이어 이달부터 12월까지 다다 준노스케와 합작한 ‘태풍기담’을 또다시 한·일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외국과의 합작 연극을 1년에 두 편이나 올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는 14일 국민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의식하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올해 한·일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합작 공연 2편을 만들게 됐다”면서 “관객들이 정치적으로 예민한 시기에 역사문제와 양국 관계를 다룬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고 밝혔다.

그가 히라타와 함께 쓴 ‘신모험왕’은 한일월드컵이 있던 2002년 터키 여행 중인 한국과 일본의 젊은 배낭여행자들의 모습을 담았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월드컵 16강전을 소재로 최근 한·일 관계가 악화된 이유를 짚어내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했다.

이에 비해 그가 쓰고, 다다가 연출하는 ‘태풍기담’은 양국의 역사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셰익스피어 말년의 낭만극 ‘태풍’은 왕위를 찬탈당한 밀라노 공작 프로스페로가 정적들에게 복수하지 않고 딸과 상대편 나폴리 왕의 아들을 결혼시켜 극적으로 화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20년 무렵으로 설정된 ‘태풍기담’은 원작의 화해 대신 갈등을 고스란히 남겨둔 정치극이 됐다.

그는 “‘태풍기담’은 일본 군국주의 침략으로 한국의 봉건주의가 무너지면서 근대화에 강제로 휘말린 모습과 일본이 ‘대동아공영’ 논리로 태평양전쟁까지 일으키는 모습을 패러디했다”며 “깊은 반성과 정리가 안 된 현재 한·일 관계에서 단순한 용서와 화해를 말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시절 교환학생으로 일본에서 공부한 것을 계기로 일본 연극에 천착했다. 특히 구어 연극을 제창한 히라타의 연극관에 깊이 공감한 그는 2006년 히라타의 ‘과학하는 마음’ 시리즈를 매년 공연하며 평단의 호평과 대중의 인기를 동시에 얻었다.

그는 “일본에서 공부하면서 근대 시대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근대는 우리가 식민지 지배를 당한 불편한 시대이긴 하지만 현재 한국 모습의 원형이 상당 부분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흥미가 생겼다”면서 “일본에 대한 관심은 결국 한국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으로 연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회가 있다면 다른 나라와 합작을 하고 싶다”고 했다.

‘태풍기담’은 16∼17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과 24일∼11월 8일 서울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오른다. 이어 11월 26∼29일 일본 도쿄예술극장, 12월 4∼6일 도쿄 인근 후지미시민문회관에서 공연될 예정이다.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