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질병의 대명사인 아프리카 동부 말라위에서도 가장 천대받는 곳인 마칸디 교도소. 이곳에서 생활하며 농장을 관리하는 사랑의곡식재단 실무책임자 김용진(60) 목사는 지난 7월 초 수용자들에게 다소 ‘엉뚱한’ 제안을 했다. 물동이나 땔감을 머리에 이고 다니느라 몸이 아픈 여성들을 위해 ‘지게’를 만들어 주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김 목사는 나무와 말린 수초로 만든 지게를 내밀었다. 그리고 지게를 사용하면 머리에 이고 나르는 것보다 몸이 아프지 않을 뿐 아니라 안전하고 쉽게 물을 운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해줬다.
김 목사가 지게 제작을 권유한 것은 진료소를 찾는 여성 환자 가운데 열에 여섯이 각종 근육통과 신경통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진통제나 소염제를 계속 제공해도 통증 환자는 줄지 않았다. 지게는 배낭과 같이 등에 메고 양쪽으로 두개의 물통을 나르기 때문에 몸에 무리를 덜 준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김 목사는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이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고무적인 것은 지게를 사용해 본 이들의 반응이 무척 긍정적이라는 점이다.
“머리 위에 수십㎏이나 되는 무거운 물통을 이고 다닐 때 생기는 머리와 목, 다리 통증을 예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조이스 민도조)
“10㎞ 떨어진 강이나 우물에 가서 하루에 최소 다섯 통의 물통을 집으로 날라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쉽게 두세 배나 많은 물을 길어 올 수 있게 됐습니다.”(30대 여성)
지게는 현재 마칸디 지역의 가정마다 한 개씩 무상으로 보급되고 있다. 여러 마을 추장과 목회자 등 지역사회와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지게를 공급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아프리카의 남자들은 머리에 물통을 이고 다니지 않았다. 남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여겼던 것이다. 김 목사는 이 지역 청년 존 루카씨의 반응을 전했다. 그는 “지게를 사용하게 된 뒤 남자들도 부인이나 딸들의 힘든 삶을 도울 수 있게 됐다”며 “지게는 이제 우리 가정에 필수품이 됐고 가족 구성원 모두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목사는 2002년 말라위 정부의 기술고문으로 아프리카에 첫발을 내디뎠다. 100만㎡ 규모의 교도소 농장에서 옥수수와 콩을 경작해 불우이웃에게 나눠주는 ‘사랑의곡식 프로젝트’(Crops of Love Project)를 진행 중이다. 농작물의 반은 교도소에, 나머지는 고아원·양로원·병원 등 열악한 상황에 있는 이들에게 제공한다.
김 목사는 “지금까지 남의 것을 빼앗던 수감자들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종사함으로써 출소 후에도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훈련을 받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말라위 재소자들의 특별한 봉사… 물동이 이는 현지 여성들 위해 지게 만들어 배포
입력 2015-10-15 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