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금융개혁에 대해 날선 비판을 쏟아내면서 금융권이 흔들리고 있다. 금융개혁이 산업경쟁력과 소비자 만족도를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정부의 ‘관치금융’ 드라이브가 금융사의 경영 자율성을 해치는 것 아니냐는 논란도 일고 있다.
금융개혁이 새삼 도마에 오른 건 최 부총리가 지난 11일(현지시간) 페루 리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때 한국 기자들과 만나 “은행이 오후 4시에 문 닫는 데가 어디 있느냐”며 금융권을 겨냥하면서다. 최 부총리의 날선 비판에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지난 13일 “은행 영업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은행들이 각자 영업계획에 따라 운영해 왔던 특수점포 운영방식에도 갑작스러운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박 대통령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와 대국민 담화에서 금융개혁의 시급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금융권의 보신주의 관행을 없애 시중에 돈이 돌게 만들고, 소비자 편의를 늘리겠다는 게 골자다.
대통령과 경제부총리의 ‘금융권 때리기’ 이후 금융지주가 발 빠르게 움직인 사례는 금융지주 회장들의 연봉 30% 반납에서도 드러났다. 신한·KB·하나금융에 이어 지방금융지주와 시중은행 최고경영자들도 연봉 반납 대열에 동참했다. 당시 은행들은 하반기 채용계획을 확정한 상황에서 추가 일자리 창출계획을 잇따라 발표했었다. 박 대통령이 강조한 청년희망펀드의 경우에도 은행별로 고위공직자와 유명인사가 가입했다는 사실을 내세우며 유치 경쟁이 뜨겁다.
전문가들은 경제 컨트롤타워의 발언이 금융의 역동성을 자극하기보다 단순히 채찍질만 하는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보겠지만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본래 취지를 달성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14일 “은행 영업시간이 탄력적으로 운영되면 소비자 편의성은 좋아지겠지만 부총리가 해야 할 얘기는 금융자율화, 책임경영체제 보장 같은 큰 그림”이라며 “정부가 불필요하게 금융권을 압박하는 건 금융개혁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오정근 건국대 정보통신대학원 교수는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면 소유·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정부가 낙하산 인사 문제는 금융개혁 과제로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며 “금융의 자율성을 키워주면 금융사들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권 내부에서 금융개혁에 대한 자성론이 나오기도 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개혁이 업계 위주로 진행되고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는 나아지지 않는다는 불만이 커진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규제완화 위주의 금융개혁이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융개혁은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것인데 경쟁력은 금융기술과 금융지식에서 나온다”며 “금융사들이 직원 재교육을 강화하도록 유도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생각해봅시다-박대통령·최경환 금융권 때리기] “금융경쟁력 강화커녕 자율성만 해쳐… 큰 그림 그려야”
입력 2015-10-15 0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