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악의 원전 사고가 일어났던 옛 소련 지역의 우크라이나 서북부 체르노빌. 1986년 4월 26일 원자로가 폭발해 방사능 가스와 물질이 4.5㎞ 높이의 공중으로 날아가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거쳐 유럽을 강타했으며, 러시아 한국 일본을 지나 북미까지 도달했다. 발생 후 6년 동안 사망자 8200명, 거주민 13만명 이주, 영향 지역 내 갑상선 질환·백혈병·암 발생률 50% 이상 증가, 방사능 후유증 환자 43만명.
30년 가까운 이 ‘죽음의 땅’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지난주에 있었다. 멧돼지, 노루, 붉은사슴 등 야생동물의 개체수가 사고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는 연구진의 발표가 있었다. 늑대는 다른 지역보다 7배나 많았다고 한다. 사고 후 20년 동안 동물 개체수를 추적해 온 연구진은 ‘원전 사고보다 사냥이나 개발 같은 인간의 위협이 자연 생태계에 더 해롭다’는 분석을 학술지에 실었다.
체르노빌 관련 다큐멘터리 동영상을 보면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아 처참하고 황량하게 된 시가지나 농촌 풍경이 나온다. 원전 사고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런데 인간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그런 원전 사고보다 인간들의 행위가 훨씬 더 자연을 망가뜨릴 확률이 높다니…. 꽤나 역설적이다. 자연한테는 인간의 탐욕적 행위가 최대의 적인 셈이다.
다크 투어리즘이란 제법 인기 있는 여행 상품이 있다. 잔혹한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나 재난·재해 현장을 돌아보는 것이다. 일종의 역사교훈 여행인데, 400만명이 학살당했던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체르노빌도 인기 장소란다. 참혹한 원전 사고를 상기해보자는 취지이긴 한데, 다시 인간의 탐욕이 체르노빌을 상품화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체르노빌에서 개체수가 서서히 늘어나는 야생동물들이 인간들에게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듯하다. “너만 잘하면 지구는 평화스럽고 안전해∼.”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
[한마당-김명호] 체르노빌
입력 2015-10-15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