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마다 바닷물과 민물이 섞이는 기수지역(汽水地域)이란 게 있다. 바닷물이 드나들면서 자연스럽게 정화가 되고 영양분이 풍부해 다양한 식물과 어종이 분포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영산강은 옛날에 나주 영산포까지 바닷물이 올라왔다고 한다. 하류에서 60㎞ 정도나 된다. 나주 구진포가 과거 장어로 유명했던 것도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낙동강은 하굿둑에서 45㎞ 떨어진 삼랑진 너머까지 바닷물이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바닷물이 드나들 땐 낙동강에서도 재첩을 쉽게 채취했었다는 ‘전설’도 들린다.
그러나 70, 80년대 부족한 농·공용수와 식수 해결을 이유로 영산강과 낙동강, 금강에 하굿둑이 차례로 생겼다. 하굿둑이 바닷물을 막으면서 기수지역은 사라졌고 죽은 강이 됐다. 영산강은 1981년, 낙동강은 1987년, 금강은 1990년에 하굿둑이 완공돼 바다와 강이 단절됐다. 흐르지 않는 강은 썩어갔다. 그런데도 하굿둑을 열어 정화시킬 시도는 하지 못했다. 바닷물이 들어오면 물은 깨끗해지지만 농업·생활용수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젖줄 3곳이 그렇게 방치됐다. 그런 강물로 논에 물대고, 정수해서 마셨다.
그런데 부산시가 이런 고정관념을 깨보겠다고 나섰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지난달 23일 낙동강 하굿둑 수문을 개방하겠다고 선언했다. 낙동강 하류가 너무 더러워 이제 식수로도 못쓸 처지라면 차라리 바닷물을 유통시켜 생태계를 복원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낙동강에선 더 이상 악취가 진동하는 담수호 시대를 끝내고, 건강한 생태계가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를 준비하겠다는 취지다.
사실 하굿둑이나 보 개방은 언제부턴가 진보 진영의 어젠다로 인식돼 왔다. 물길을 열자는 쪽은 늘 진보였고, 보수 쪽은 반대였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강 하류의 신곡수중보 철거를 거론하자 새누리당 쪽에선 “말도 안 된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도 하굿둑을 열어 금강 생태계를 복원시켜 보려고 하지만 전북의 반발에 막혀 있다.
그런 점에서 서 시장의 하굿둑 개방 선언은 의외다. 물론 서 시장에겐 낙동강을 더 방치해선 안 된다는 관할 지자체장의 절박함이 엿보인다. 어쨌든 보수 진영의 서 시장이 ‘물길 개방’을 거론하자 부산지역 환경·시민 단체들이 적극 호응했고,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참석하는 토론회도 예정되는 등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그러나 사정이 녹록한 건 아니다. 우선 정부가 수조원이 필요한 예산을 핑계로 뒷짐을 지고 있다. 하굿둑으로 바닷물을 끌어들이려면 취수원도 옮겨야 하고, 인근 농지의 염분 피해 대책도 필요하다. 2조7000억원이 넘는 비용이 든다는 얘기도 나온다. 게다가 부산시는 오래전부터 경남도와 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오염된 낙동강 물을 먹을 수 없으니 진주 남강댐 물을 쓰자고 제안했다가 거부당했다. 또 경남 창녕 강변여과수 개발사업도 진척이 없다. 요즘 전국적인 가뭄으로 물이 귀해진 것도 악재다. 하지만 서 시장은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고 기수·해수 담수화 등 여러 방법이 있다”고 자신했다.
어쨌든 낙동강 하굿둑 개방은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해 보인다. 만약 바닷물을 유입시켰는데 도저히 감당 못할 혼란이 생기면 그때 담수호로 되돌려도 되지 않을까. 저렇게 썩어가는 강을 방치해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하굿둑 건설 당시 동양 최대 철새 도래지였던 을숙도 환경 훼손을 놓고 ‘철새 논쟁’이 있었다. 그때 건설 찬성 쪽에선 “철새가 밥 먹여주느냐”라는 논리를 댔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세계 5대 연안습지’를 만들어낸 순천은 철새가 밥 먹여주는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시대가 바뀌었다. 노석철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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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노석철] 낙동강 하굿둑에 바닷물 드나든다면
입력 2015-10-15 0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