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 싼타페 운전자가 수입차 벤틀리(차량가 3억원)를 들이받았다. 자기과실 100%인 충돌사고였다. 벤틀리 수리비만 1억5000만원이고, 수리하는 한 달 동안 같은 차를 렌트해주는 데 드는 비용이 하루 150만원씩이었다. 수리비와 렌트비를 합하면 새 차 값의 3분의 2인 2억원을 물어줘야 했다. 싼타페 운전자는 대물배상이 최대 1억원인 자동차보험에 들어 자기 돈 1억원을 더 내게 됐다. 고가 차량과 저가 차량 사이에 교통사고가 났을 때 저가차 운전자가 경제적 위험에 처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수입차의 평균 수리비는 국산차의 2.9배다. 렌트비는 3.3배, 추정(미수선)수리비는 3.9배에 달한다. 폭탄이나 다름없는 고가 수입차 수리비는 결국 저가 국산차를 포함한 모든 차량 운전자들의 보험료를 올리게 된다. 비싼 외제차를 모는 부담이 다른 운전자에게 전가되는 셈이다.
보험연구원은 13일 고가차 관련 자동차보험 제도 개선 세미나를 열어 이런 부조리를 고칠 방안을 논의했다. 발표자들은 고가차 보험료 합리화, 사고 시 최저 비용 차량으로 대차, 무분별한 부품 교환 억제, 추정수리비 폐지 등을 개선안으로 제시했다. 보험연구원 전용식 연구위원은 수리비가 전체 차량 평균의 120%를 넘는 고가차(수입차 40개, 국산차 22개 차종)에 대해 자기차량손해담보(자차) 보험료를 3∼15% 할증할 것을 제안했다. 수리비가 평균의 120∼130%일 때 3%, 130∼140%일 경우 7%, 140∼150%에선 11%, 150% 초과 때는 15%를 더 부과하는 식이다.
중고차 시장에서 670만원하는 낡은 벤츠도 수리 기간에는 1억원이 넘는 신형 벤츠로 렌트해주는 식의 사고 시 대차 기준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연구위원은 표준약관의 렌트 차량 지급 기준을 현행 ‘동종 차량’에서 ‘동급 차량’으로 바꿔 수입차를 동급의 국산차로 렌트하는 방안을 내놨다.
차량을 수리하지 않고 예상되는 수리비를 현금으로 받는 추정수리비도 문제다. 허위 견적서로 과도한 비용을 청구하거나 이중 청구하는 식으로 보험 사기에 악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전 연구위원은 단독·일방 과실로 인한 자차 사고에 대해선 추정수리비를 지급하지 않고 실제 수리비만큼 보험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또 경미한 사고에 대한 수리 기준을 규범화해 무조건 부품을 교체하는 관행을 근절하고 현재 표류 중인 대체부품 인증제도를 활성화해 수리비를 절감할 것을 주장했다. 이것 역시 부품 가격이 국산차보다 4.6배나 비싸고 부품교체율도 높은 수입차를 겨냥한 제안이다.
전 연구위원과 함께 발표자로 나선 김은경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저가차의 고가차에 대한 손해사고 부담은 형평성이 왜곡된 측면이 있다”며 “위험 비용이 더 큰 자동차에는 사회적 비용을 확대시킨 2차적 책임까지 환산해 보험료율에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국산차에 수입차 ‘수리비 폭탄’ 떠넘기기 급제동… 보험硏, 自車 보험료 인상 제안
입력 2015-10-14 0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