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러 대리전된 시리아] ‘공공의 적 IS’ 앞에 두고 중동 패권전쟁

입력 2015-10-14 02:53
12일(현지시간)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이 시리아 정부군의 공습을 받아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러시아가 최근 시리아 내 반군 공습을 확대하자 미국은 시리아 반군에 무기 지원을 하고 나서면서 시리아 내전이 더욱 복잡한 국제 대리전으로 빠져들고 있다. UPI연합뉴스
러시아가 시리아 내 반군 공습을 확대해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뒤를 받치자 미국이 '반군에 무제한 무기 지원'이라는 강수(强手)로 대응에 나섰다. 알아사드 독재정권과 반군 사이에 촉발된 시리아 내전이 '이슬람국가(IS)'의 득세로 진창에 빠진 뒤 두 군사 강국의 대리전 양상으로까지 비화되는 모양새다. 수백만명에 달하는 난민 위기의 근원지인 시리아 사태는 미·러와 서방, 중동 각국의 이해관계가 뒤얽힌 가운데 외교적 해결이 불가능한 '시계 제로'의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발등에 불 떨어진 미국=IS 대응전을 총괄하는 미군 사령부는 공군 C-17 수송기를 통해 탄약을 낙하산에 매달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시리아 반군에 공급했다고 12일(현지시간) 밝혔다. 지원 대상 세력에 대해서는 수천명 규모의 ‘시리아 아랍 연합군(SAC)’이라고만 언급했다. 공급된 무기류는 총 50t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군사자문관을 파견, 반군을 훈련시켜 알아사드 정권을 몰아내겠다는 미국의 기존 전략이 러시아 개입으로 사실상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추가 개입을 꺼리던 미국은 반군에 본격적으로 무장을 지원해 힘의 균형을 맞추려 하고 있다. 러시아의 공습으로 수세에 몰리던 반군들이 미국 의도대로 정부군에 강력한 반격을 가하면서 시리아 서부의 격전 지역은 판세를 가늠하기 힘든 접전 국면에 빠졌다. 13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러시아 대사관에는 반군이 쏜 것으로 추정되는 로켓탄 2발이 떨어졌다. 반군들이 한발 더 나아가 사실상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시리아 하마주에서 활동하는 반군 지도자는 뉴욕타임스(NYT)에 이번 물자 지원에 대해 “백지 위임(carte blanche)이나 다름없다”고 설명하면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만큼 얻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무기 지원을 받은 반군그룹 ‘디비전13’의 아마드 알사우드 사령관은 “우리는 매우 단시간에 요청한 것들을 얻었다”며 “(지원받은) 대전차 미사일로 이틀 만에 7대의 장갑차와 탱크를 파괴했다”고 전과를 과시했다.

◇‘옛 소련처럼’ 지중해 거점 노리는 러시아, 오버랩되는 아프간 내전의 악몽=미·러 양측 모두 ‘IS 척결’을 표면적인 목표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미국은 ‘알아사드 정권 축출’, 러시아는 ‘알아사드 정권 수호’라는 복심에만 몰두하는 양상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0일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과제는 시리아의 합법적 정부를 안정시키고 정치적 협상을 모색하기 위한 조건을 만드는 것”이라며 ‘알아사드 구하기’가 시리아 공습의 목표임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푸틴 대통령에게는 ‘이란 하메이니-시리아 알아사드’로 이어지는 오랜 시아파 아랍 동맹전선을 포기할 수 없다는 명확한 동기가 있다. 더불어 지중해와 접한 시리아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할 때 이 지역을 영향권 안에 둬야 한다는 군사적 이유도 분명하다. 러시아가 공군기지를 신설한 시리아 서부 항구 라타키아는 미국의 중동지역 거점 동맹국인 터키와 100㎞ 남짓한 거리에 불과한 전략적 요충지다. 미국 뉴스위크는 “시리아 개입이 크림 병합에 따른 미국과 유럽의 경제 제재에서 탈피할 수 있는 지렛대를 러시아에 제공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양국이 차례로 중동 국가 내전에 개입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냉전이 절정에 달한 1979년 당시 소련은 10만여 병력을 투입해 내전에 허덕이던 아프가니스탄을 전격 침공했다. 이에 미국은 소련 점령군에 맞선 아프간 무장세력 무자히딘을 후방 지원하는 전략으로 맞섰다. 1989년 소련이 철수할 때까지 아프간에서는 200만명에 가까운 사망자와 500만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했다. 미국과 러시아의 파워 게임으로 이 지역에서 IS라는 ‘암덩이’를 제거하지 못하고 ‘역사는 반복된다’는 비극적 진리만 재확인시킬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