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매길 수 없는 보물이지만 굳이 금전적 가치를 따지자면 1조원 이상이다.” 2011년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소유권 재판에서 문화재청은 그 가치를 이렇게 평가했다. 상주본은 몇 년째 행방이 묘연하다. 상주본을 갖고 있다고 알려진 배익기(52)씨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1조원의 10분의 1인) 1000억원을 주면 내놓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국보급 문화재를 국가가 찾아올 방법은 없을까. 법조계는 일단 상주본의 소유권이 문화재청에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문화재청이 배씨를 상대로 강제집행 절차를 밟거나 인도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소송 결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배씨가 버틴다면 실질적으로 강제 환수할 방법은 거의 없다.
배씨는 2008년 7월 경북의 한 방송사에 상주본을 공개했다. 경북 상주에 있는 집을 수리하다 발견했다고 했다. 상주본 공개 전까지는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돼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간송본’(국보 제70호)이 현존하는 유일한 훈민정음 해례본이었다.
상주본이 자취를 감추게 된 결정적 계기는 소유권 다툼이다. 골동품업자 조용훈(2012년 사망)씨가 “내 가게에 있던 상주본을 배씨가 훔쳐갔다”고 주장하며 민사소송이 시작됐다. 2011년 대법원은 조씨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에 졌지만 배씨는 상주본을 조씨에게 넘기지 않았다. 법원과 검찰은 강제집행과 압수수색으로 배씨 집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지난 3월에는 배씨 집에 불까지 나 상주본이 무사한지 확인조차 안 되는 실정이다. 게다가 배씨의 문화재 절도 혐의를 판단하는 형사재판에서 민사와 다른 결과가 나왔다. 항소심과 대법원은 배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조씨는 숨지면서 소유권을 문화재청에 넘겼다. 법조계는 형사판결과 관계없이 민사판결의 효력이 유지된다고 본다. 대법원 관계자는 13일 “양 당사자 간의 소유권을 다투는 문제는 민사재판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즉 조씨에게 소유권을 넘겨받은 문화재청이 상주본 소유권자가 되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소유권자로서 배씨를 상대로 강제집행 절차에 착수할 수 있다. 물품인도를 청구하는 민사소송도 가능하다. 법조계 관계자는 “강제집행 대상 재산을 은닉·손괴하는 경우 적용되는 강제집행 면탈죄 적용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배씨가 상주본이 있는 곳을 끝까지 함구하면 막상 상주본을 넘겨받을 길이 없다. 배씨는 문화재 절도죄로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을 때도 억울함을 호소하며 상주본의 행방에 대해 함구했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훈민정음 상주본 강제환수·인도소송 가능하다”
입력 2015-10-14 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