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최 부총리의 금융개혁 책임전가, 불신만 부추겨

입력 2015-10-14 00:42
금융개혁에 관한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인식이 너무 황당해 놀라울 따름이다. 최근 페루 리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에 참석한 최 부총리는 현지 기자간담회에서 “지구상에 오후 4시면 문을 닫는 금융회사가 어디 있느냐”며 한국 금융사들의 근무 방식을 질타했다. 또 “입사하고서 10년 후에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도 일을 안 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한국 금융이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라며 고임금 문제도 건드렸다. 그러고는 금융개혁이 지지부진한 책임을 노조에 돌렸다. “금융회사 지배구조의 한 축을 이루는 노측의 힘이 너무 강해 (개혁이) 역동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며 금융개혁이 성공하려면 금융권의 노사 관계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부총리의 발언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기본적인 사실관계부터 틀렸다. 우선 선진국 은행들의 영업시간을 보면 폐점 시간이 우리와 비슷하다. 미국이 주(州)마다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오후 4∼5시이고, 일본의 주요 은행들은 오후 3시로 우리보다 짧다. 영국 독일 등 유럽은 오후 3∼6시에 창구 영업을 마친다. 은행 셔터 문을 내린다고 곧바로 퇴근하는 것도 아니다. 입출금 숫자를 맞추는 등 잔업을 하다보면 저녁 7∼8시를 넘기기 일쑤다. 게다가 국내 시중은행들도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고객 수요를 감안해 야간·주말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최 부총리의 접근방식과 진단도 엉터리다. 인터넷·모바일뱅킹이 확산돼 은행 비대면 거래 비중이 9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오프라인 영업시간을 문제 삼고 있으니 한심스럽기만 하다. 오히려 핀테크 활성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게 상식이다. 미진한 금융개혁이 노조 탓이라고 전가하는 것은 더욱 어이가 없다. 세계경제포럼(WEF) 평가 결과 한국의 금융 경쟁력이 세계 87위로 우간다(81위)보다 못한 원인은 근본적으로 관치금융과 낙하산 인사에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지난 7일 발표한 ‘하반기 금융 신뢰지수’에서 금융감독 효율성, 금융정책 적정성 부문 신뢰도가 최하점을 받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국내 소비자들은 금융사보다 금융 당국을 더 불신하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개혁의 본질을 호도해선 안 된다. 지금까지 보신주의 영업 관행 타파, 금융규제 완화, 감독체계 개편 등을 금융개혁의 주요 과제로 삼아 왔음에도 느닷없이 화살을 노사 문제로 돌리려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금융개혁의 첫걸음은 금융권 자리를 먹잇감으로 여기는 낙하산 인사 청산, 그리고 끝없이 경영 간섭을 하는 관치금융 철폐에서 시작돼야 한다. 그럼에도 근본 원인은 외면한 채 엉뚱한 발언만 하고 있으니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최 부총리가 내년 총선 출마를 앞두고 마음이 콩밭에 가 있어서 계속 헛발질을 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