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실관계 잘못 바로잡아야 국정화 의미가 있다

입력 2015-10-14 00:42
정부가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기로 확정했지만 험로가 가로놓여 있다. 각계 반발이 여전한 상황에서 군사작전 하듯 밀어붙일 경우 ‘올바른 교과서’는커녕 ‘부실덩어리 교과서’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국정화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수준 높은 교과서’를 만들 수 있는 묘안을 짜내기 바란다. 정권교체 시 내용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 않도록 치밀하게 집필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게 할 자신이 없으면 지금이라도 국정화를 포기하는 것이 옳다.

가장 큰 난관은 최고 수준의 집필진을 구성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국정화를 반대하는 대다수 역사학자는 말할 것도 없고 학계에서 존경받는 학자의 경우 어용 시비에 휘말릴까봐 집필을 꺼릴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보면 중도라고 포장된 보수 성향 학자들이 다수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이 “집필진 구성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함부로 자신할 일은 아니다.

정부가 교과서 발간을 너무 서두르는 것도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다음달에 시작해 1년 뒤인 내년 11월 말까지 집필을 마치고 12월부터 감수, 인터넷 공개, 현장 적합성 검토 등을 거쳐 2017년 3월 학교에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국정화가 흐지부지되지 않도록 박근혜 대통령 임기 중에 새 교과서를 배포한다는 전략이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1년 안에 집필을 완료한다는 것은 무리다. 현대사의 경우 학자 성향이나 소신에 따라 사사건건 시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토론을 거쳐야 한다. 정부가 정한 일정에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속도전을 벌이다보면 필연적으로 졸속이나 왜곡을 부를 것이다. 새 교과서가 신뢰받지 못하면 그 순간 국정화는 실패다.

국사편찬위원회는 현재의 검인정 역사 교과서가 국가발전 과정에서의 기독교 역할이 지나치게 과소평가돼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번 기회에 타 종교와 균형을 맞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기독교는 일제시기 독립운동, 한글보급, 교육은 물론 정부수립 이후 산업화,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음에도 교과서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이런 것조차 바로잡지 못하면 국정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