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프로그램을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단 보기 시작하면 빠져들게 된다. 처음 듣는 목소리, 낯선 얼굴들인데도 시선을 잡는 뭔가가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묘미는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은 2009년이다. 케이블TV 엠넷에서 ‘슈퍼스타K’를 처음 시작한 이후 방송가에는 오디션 열풍이 불었다. ‘위대한 탄생’(MBC), ‘톱(TOP) 밴드’(KBS), ‘K팝 스타’(SBS) 등 지상파 방송국에서도 오디션 프로그램에 뛰어들었다.
이제 열풍은 가라앉았다.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시청률 1∼2%대 정도 나올 뿐이다. 하지만 오디션 참가자들의 실력을 들여다보면 오디션 프로그램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 단정 지을 수 없게 된다. 초창기 오디션 프로그램이 풋풋한 신인 발견의 성격이 강했다면 지금은 숨은 고수를 찾는 기회가 되고 있다.
현재 방송 중인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 7’, ‘톱 밴드 3’에서도 이런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숨은 고수를 찾아내는 재미,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모두 느낄 수 있다. 오디션 참가자들 뿐 아니라 시청자들 또한 ‘좋은 음악’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오디션? 숨은 고수 찾기!=두번째달(2006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앨범 선정), 중식이(2014년 한국인디뮤지션대상 금상), 아시안체어샷(2015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노래상). 인디씬에서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그룹들이다. 리싸, 데드버튼즈, 애프니어, 스트릿건즈, 조문근밴드, 리플렉스 등도 인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귀에 익은 이름들이다.
마니아들은 일부러 찾아 듣지만 대중적인 인지도는 낮다. 그런데 이들의 이름이 온라인과 유튜브, 음원 사이트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면서부터다. 밴드 중식이와 리플렉스는 ‘슈퍼스타K 7’, 다른 그룹들은 ‘톱 밴드 3’에 출연 중이다. 중식이는 지난 8일 최종 탑10에 올랐고 리플렉스는 탈락했다. ‘톱 밴드3’는 오는 17일 본선에 오른 16팀의 코치 결정전을 보여줄 예정이다.
이미 ‘프로’라고 봐도 좋을 밴드들이 왜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온 걸까. 그들이 직접 말한 이유를 요약해보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서’가 가장 컸다.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면 이렇다. “저희가 진지하게 음악을 한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했어요. 더 많은 분들이 인디 음악을 들어보고 관심 가져 주시길 바라고요.”(중식이) “음악만큼 저희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더라고요. 더 많은 분들에게 저희를 알리고 싶었습니다.”(두번째달) “이런 음악을 하는 애들이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아시안체어샷)
선뜻 말하지는 못하지만 ‘배가 고파서’도 밴드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는 이유다. 중식이는 멤버들이 각각 다른 일을 하면서 음악을 병행하고 있다. 음악만 해서는 벌이가 안 된다. 톱 밴드에 출연 중인 스트릿건즈 보컬 철수는 중·고교 급식 배식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음악 하는 사람이라면 6개월은 음악을 만드는데 열중하고, 나머지는 공연하고 무대에 서는 게 꿈이 아닐까 싶다.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인디밴드 멤버는 “인디밴드가 우리나라 대중음악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지만 인디밴드들은 기본적으로 가난하다. 투잡 뛰는 친구들도 많고, 돈 때문에 결국 음악하기를 포기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톱 밴드’의 우승상금은 1억원, ‘슈퍼스타K’는 5억원이다. 우승상금도 매력적인 대목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을 발견하는 맛=숨은 고수를 만나는 것 못잖게 재밌는 지점은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을 발견하는 데 있다. ‘슈퍼스타K’에는 170만명, ‘톱 밴드’에는 622개팀이 지원했다. 지원자 수가 많은 만큼 새로운 인물을 찾을 가능성도 높아졌다.
‘슈퍼스타K’ 참가자들은 특히 그러하다. 버스킹을 하다가 만난 듀오 마틴 스미스, 아이비리그에서 졸업하고 벤처 회사를 차렸던 케빈오, 바리스타로 일했던 이요한은 새로운 인물들이다. 미국 오디션 프로그램 ‘더 보이스’에 참가한 경력이 있는 클라라 홍, 유튜브에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자밀킴 등도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오고 있다.
‘톱 밴드’도 14세 기타 천재, 16세 드럼 천재 등 개인 참가자들을 밴드로 엮는 신선한 시도를 했다. 기타리스트 신대철이 “계속 솔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라”고 할 정도의 실력을 보인 기타리스트 안중재 등을 선택하고 코치들이 밴드를 만들어줬다. 이렇게 완전히 새롭게 탄생한 밴드가 4팀이다. ‘톱 밴드’는 시즌2에서 기성 밴드들이 너무 많이 참가하면서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윤영진 PD는 “시장에서 소외된 역량 있는 밴드 음악과 대중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국내 음악시장에서 충분히 가치 있는 음악을 들려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숨은 고수 찾고 ‘원석’ 발견하는 재미 ‘쏠쏠’… 오디션 프로그램 100배 즐기기
입력 2015-10-14 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