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 체제로 전환하면서 교실이 ‘이념대립’의 전장(戰場)으로 떠오르게 됐다. 국정 교과서는 반공·경제성장 등 보수 진영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호의적으로 기술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승만·박정희정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전망이다.
교사들은 이에 대한 거부감을 교실에서 표출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대학수학능력시험 필수 과목인 한국사를 ‘교과서대로 가르치라’는 학생·학부모 등과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
‘배울 권리’와 ‘가르칠 권리’ 충돌하나
진보 성향 교육감, 역사학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은 정부의 국정화에 ‘불복종운동’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가 만든 국정 교과서를 가르치길 거부하고 대안교재 등으로 역사 수업을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교육청별로 대안 한국사 교과서가 만들어질 수 있고, 교사들이 별도 교재를 제작·활용할 수도 있다. 교실에서 국정 교과서 내용을 가르치더라도 정부의 시각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국정화 방침에 대다수 교사들이 반발했던 만큼 이런 형태의 수업이 일반화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한국사는 2017학년도부터 수능 필수 과목이 된다. 과거에는 서울대를 지원하는 일부 수험생들이 준비했던 과목이었지만 이젠 모든 수험생과 학부모의 관심을 받는 대입 핵심 과목이 됐다. 교사들이 부교재 등을 활용해 별도 수업을 진행한다면 학교 현장에서 ‘파열음’이 터져나올 수 있다.
경기도 중학교의 정모(61) 교장은 “교실에서 ‘교과서 따로, 가르치는 내용 따로’가 될 것이다. 교사들은 ‘교과서는 이렇게 돼 있지만 실제로는 이렇단다’라고 가르칠 텐데, 그러면 학생이나 학부모가 교사들을 사상 검증하게 될 것”이라며 “결국 유신 때처럼 비판적 역사 교사를 징계하는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실에서 보조 교재가 교과서를 대체해선 안 된다. 국정화 취지를 희석시키는 어떤 시도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수업을 어떻게 하느냐는 교사의 수업권과 관련된 부분이라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만·박정희·북한…어떻게 쓰일까
가장 많이 바뀔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은 북한 관련 서술이다. 김재춘 교육부 차관은 12일 “올해 수능을 치르는 2011년 검정 (한국사) 교과서를 보면 ‘독재’라는 표현이 남한은 24번, 북한은 2번 쓰였다”며 “남한은 남한사람들이 투표해서 만들어졌고, 북한은 남북한 대의원이 만든 나라라는 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것이 국민 정서상 수용이 가능한가”라고 비판했다.
현재 고교 교과서들은 ‘조선민족제일주의’ ‘우리식 사회주의’ ‘선군정치’ 등의 북한 선전 구호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의 3대 세습을 다루면서 주체사상의 개념을 소개하고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사진을 싣기도 한다. 앞으로 국정 교과서에선 북한의 3대 세습이나 독재, 인권유린, 파탄 난 경제 등을 집중 설명할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정부에 대해서는 기존에 ‘독재’ ‘유신’ 등이 중심 단어였지만 국정 교과서엔 ‘경제발전’ 등 긍정적 서술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가 ‘국정화 명분’을 집약해 여당 의원들에게 배포한 ‘고교 한국사 교과서 분석’에도 18개 주제 중 4개 이상이 “박정희정부에 대해 평가가 인색하다”는 지적이었다. 예컨대 베트남전 파병 등이 군사·경제적으로 긍정 효과가 있었지만 양민학살 등만 유독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산업화·민주화를 이룬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상에 대해 균형 있게 서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승만정부에 대해서는 기존에 ‘친일’ ‘독재’라는 비판이 주류를 이뤘지만 국정 교과서에선 ‘건국 대통령’ ‘초대 대통령’이라는 점을 부각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광복절’과 ‘건국절’을 둘러싼 해묵은 이념 다툼이 다시 불거지게 된다.
세종=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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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0-13 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