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믿을 수목장림이 없다

입력 2015-10-14 02:37
정모씨 유족들이 지난 3일 경기도 양평 하늘숲추모원 가족목에서 수목장 장례를 치르고 있다. 이 추모목에는 앞으로 다른 가족들도 함께 수목장을 할 예정이다(왼쪽 사진). 양평 하늘숲추모원 오솔길 산책로 옆 나무들에 이곳이 수목장림을 알리는 팻말이 달려 있다.산림청 제공

친환경 장묘 방식으로 인기를 끄는 수목장림이 부족하다. 화장률이 크게 늘면서 수목장 선호가 높아지고 있는데도 전국에 있는 수목장림은 태부족이다. 2008년 8월 인천 부평에 공립 수목장림 인천가족공원이 처음 조성된 이후 경기도 양평 국립 수목장림 하늘숲추모원, 경기도 의왕 하늘쉼터공원 등 국공립 수목장림은 고작 3곳뿐이다. 공공법인, 종교재단, 문중, 개인이 운영한 사설 수목장림은 2009년 15곳에서 2013년 55곳으로 늘었지만 영세하고 공신력이 떨어져 이용자들의 불편이 적지 않다.

산림청은 2009년 유일한 국립 수목장림인 양평 하늘숲추모원을 조성한 이후 수목장을 원하는 유족들이 급증하자 2013년 수목장림 면적을 10㏊에서 48㏊로 확대했다. 추모목도 2009본에서 6315본으로 늘렸다. 이마저도 이미 50% 이상 분양된 상태다.

산림청은 앞으로 수목장림을 5개 권역별로 조성한다는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있다. 올해 중부권 지역인 충남 서천에 수목장림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영남권이나 호남권 등에서도 수목장림 조정 요구가 커지고 있으나 예산 부족으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전 국민의 고른 혜택을 위해 과감한 예산 투자가 요구되고 있다.

국회 김승남(전남 고흥·보성·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달 14일 산림청 국정감사에서 “앞으로 수목장 수요가 급증하는 만큼 국립 수목장을 지속적으로 늘려 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남 순천시의회 이옥기 의원은 최근 본회의 5분발언을 통해 “순천시가 친환경 장묘 방식의 하나인 수목장 제도를 한 발 앞서 도입해 국토보존과 환경보호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했다.

박종호 산림이용국장은 “수목장림의 수요가 갈수록 커지고 있으나 예산 부족으로 권역별 동시 조성이 어려운 실정”이라며 “조성 과정에서 일부 지역에서 님비(NIMBY) 현상이 있긴 하지만 수목장림 조성을 원하는 지역이 많기 때문에 이들을 대상으로 우선 조성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영세 수목장림 업체가 부도를 내거나 불법으로 분양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지만 법적 근거가 없어 책임을 묻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

최근 경기도 김포에 사는 양모(35)씨는 800만원에 영생목을 분양받아 아버지를 수목장으로 모신 후 추석을 맞아 성묘하러 갔다가 황당한 현수막을 봤다. 김포시가 수목장림 허가 구역이 아니므로 이장을 해야 한다는 현수막이었다. 영세업자는 영생목을 분양한 이후 잠적한 상태다.

수목장림의 관리가 보건복지부와 산림청으로 이원화돼 있어 관리에도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수목장림의 소관 부처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복지부가 담당하고 있다. 산림 전문기관인 산림청은 수목장림을 조성·운영하는 권한만 갖고 있다. 따라서 각종 불법행위로 산림훼손이 심각한 상황인데도 산림청은 속수무책이다.

수목장으로 신고하고 일반묘지로 운영하는 등 각종 불법행위가 벌어지고 있다. 수목장은 활성화 차원에서 ‘산지일시사용신고’만 하면 운영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간소화했다. 이런 허점을 이용, 수목장을 개장한 후 산지를 대규모로 벌채 훼손해 공원으로 조성하고, 작은 묘목만 심어놓는 등 불법 및 편법행위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또 추모목이 병충해에 걸려도 방제방법이 없다. 산림 병해충은 일반 병해충과 달리 전문적인 방제가 필요하지만 산림청은 소관업무가 아니어서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김승남 의원은 “수목장림은 산림 전문성을 확보하고 산지훼손 실태에 대한 단속권한이 있는 산림청이 관리감독권한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려대 변우혁 환경과학대학 명예교수도 “수목장림은 묘지가 아니므로 산림 전문 국가기관인 산림청이 관장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추진돼야 한다”며 “산림복지 차원에서 산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국민에게 높은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라도 산림청이 수목장림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림청은 앞으로 수목장이 장묘문화의 대세를 이룰 것으로 보고 산림복지 서비스 차원에서 다양한 정책을 계획하고 있다.

침엽수 위주인 추모목을 다양화할 방침이다. 지역 특성에 따라 여러 가지 나무를 식재하고 아름다운 조형물도 설치, 묘지라는 칙칙한 분위기를 없애려 하고 있다. 또 별도 산림에 수목장림을 조성하기보다는 휴양시설이나 캠핑장과 연계해서 수목장림을 조성해 추모와 휴식을 함께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대전=정재학 기자 jhje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