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오종석] 시장이 절로 춤추게 하라

입력 2015-10-13 00:30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정부가 메르스 등으로 침체된 내수를 살리겠다며 기획하고 주도한 대규모 할인행사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면세점 등에는 연일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정부는 소비 진작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자화자찬하며 경기가 되살아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정례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정부 주도로 너무 서두르고 준비 없이 추진되다 보니 문제점도 많이 드러나고 있다. 당장 제조업체가 참여하지 않아 할인 품목과 할인 폭이 제한적이다. 할인율 뻥튀기, 미끼상품 등으로 소비자를 우롱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전통시장은 전혀 홍보가 이뤄지지 않고 행사 참여 자체가 늦어 오히려 상대적인 피해를 보고 있다. 실제로 골목상권, 전통시장, 영세사업장 등은 오히려 손님의 발길이 더 뜸해졌다고 한다. 11일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166개 전통시장 관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에 참여한 곳은 20곳(12.0%)뿐이고, 행사 자체를 모른다는 전통시장도 56.6%에 달했다.

블랙프라이데이처럼 최근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정책이 적지 않다. 자꾸 개발독재, 관치의 냄새가 나는 듯하다. 박정희·전두환정권 시절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극단적인 얘기까지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창조경제혁신센터다. 전국 17개 시·도에서 출범한 창조센터는 지역 특화 전략산업 분야의 중소·중견기업 성장을 돕기 위해 설립된 공간이다. 삼성 현대차 등 주요 대기업이 각 지역의 후원자로 할당됐다. 2014년 9월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시작으로 각 센터가 출범할 때마다 거의 매번 박근혜 대통령이 행사장에 참석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주요 기업 총수들도 대통령의 옆자리에서 눈도장을 찍었다. 그러나 출범 1년여가 지난 현재 제 역할을 하는 창조센터는 대구 대전 등 일부 지역에 불과하다. 나머지 대부분 창조센터는 형식적인 출범만 한 채 유명무실하거나 형식적인 보여주기식 성과에만 급급하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은 결과적으로 시장의 효율성만 떨어뜨린다. 별로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시장을 왜곡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신규투자와 청년일자리 창출도 정부가 기업의 팔을 비틀며 독려하고 있지만 성과는 기대 이하다. 상당수 대기업의 경우 이미 예정돼 있는 투자와 고용을 놓고 ‘숫자 놀음’ 재탕삼탕 발표로 생색내기만 하고 있다.

기존 청년 일자리 대책으로는 지원받기 어려운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내놓은 청년희망펀드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제안하며 자신이 1호 기부자로 동참하자 국무총리와 장관, 여당 지도부, 그리고 공공·금융 부문의 수장들이 앞다퉈 가입하고 있다. 현재까지 5만4000여명이 참여해 43억원 정도의 기금이 조성됐다고 하지만 펀드 가입이 비자발적 기부의 성격을 띠면서 잡음이 무성하다. 정부는 올해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2조원 가까이 투입했지만 별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과연 이 펀드로 어느 정도 재원이 만들어질 수 있으며, 재단이 하나 더 생겨난다고 실제로 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업 투자나 일자리 창출, 소비 진작은 기업과 소비자가 신바람 나게 경제활동을 할 때 자연스럽고 지속적으로 이뤄진다. 정부가 아무리 칼을 휘둘러도 시장은 움직이지 않는다. 단지 움직이는 시늉만 할 뿐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개발도상국을 지나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다. 시장이 스스로 춤을 춰야 진짜 경제가 살아난다. 정부는 시장에서 손을 떼라.

오종석 산업부장 js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