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대구에 간 전두환

입력 2015-10-13 00:10 수정 2015-10-13 18:46

1990년 11월 4일 강원도 인제 소양강 계곡에 전세 관광버스가 추락해 22명이 사망하고 20명이 중경상을 입는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피해자는 설악산 백담사에 유배 중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가던 재경 대구공고 동문과 그 가족들이었다. 대구공고는 전 전 대통령의 모교다. 당시 백담사는 전 전 대통령의 은둔 생활에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이 전국에서 하루 수천명씩 몰려드는 관광명소(?)였다. 대구공고 동문회에선 위로방문이 붐이었다.

내가 그의 백담사 기거(88년 11월 23일) 2주년을 취재하기 위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언론사 기자들의 출입이 완전 봉쇄돼 있었다. 이틀 동안 주차장을 서성이다 대구에서 온 대구공고 동문들 틈에 끼어 간신히 사찰 안까지 들어갔으나 10여분 만에 기자 신분이 밝혀져 경호원들에 의해 쫓겨난 기억이 새롭다. 동문들이 타고 온 관광버스에는 ‘대통령 각하 힘내세요. 고교 후배들이 있습니다’란 현수막이 붙어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대구공고는 90년 전통을 자랑하는 영남지역 명문고로, 졸업생이 5만여명이나 된다. 실업고이기에 고위 공직자를 배출하기 힘든 상황에서 명색이 대통령을 탄생시켰으니 동문들로서는 대단한 자랑일 것이다. 퇴임 후 매년 동문 체육대회에 참석해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2010년에는 동문들이 특별히 마련한 팔순잔치에서 큰절을 받기도 했다. 추징금 미납 문제가 불거진 2013년부터 대구 방문을 꺼리던 전 전 대통령이 11일 3년 만에 부인 이순자 여사와 함께 대구공고 체육대회에 다녀갔다.

그에게도 여행의 자유는 있다. 하지만 군사 쿠데타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지 않은 데다 아직도 1000억원 이상의 추징금을 미납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뻔뻔스럽게 비쳐진다. 서울-대구를 오가는 KTX 열차운임이라도 한 푼 아껴 추징금부터 낼 일이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