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고교 1학년생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2018학년도부터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뀐다. 9등급제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원점수 100점 만점에 1등급은 100∼90점, 2등급은 89∼80점으로 10점 차이로 등급이 달라진다. 수능 영어가 2015학년도 난이도로 출제될 경우 상위 16%까지 1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응시자 60만명 중 9만명 정도가 이에 해당한다.
영어 절대평가를 찬성하는 쪽은 사교육비 부담이 줄고 학교 영어교육을 정상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입시 위주의 영어교육에서 탈피해 말하기, 쓰기, 듣기 위주의 실용적인 영어교육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반기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영어에 대한 지나친 과잉·중복투자를 피할 수 있다는 것도 이들의 주장이다.
반면 반대하는 쪽은 사교육이 수학과 국어 등 다른 과목으로 전가되는 이른바 ‘풍선효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고등부 영어 사교육 시장은 위축되겠지만 영어는 중학교에서 끝내고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수학에 집중하려는 학부모들 탓에 중학교 영어 사교육 시장은 오히려 커질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2013년 교육부 조사를 보면 국민이 부담한 사교육비의 65%를 영어(34%·6조3000억원)와 수학(31%·5조8000억원)이 차지했다. 또 영어 변별력 약화를 핑계로 대학들이 별도의 시험을 실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
이래서 반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영어평가 방식과 관련해 교육부가 2018학년도부터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꾸기로 결정한 것은 상대평가 시 나타나는 무한 점수경쟁의 폐해를 경감시켜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줄어든 학습 부담을 잘 이용하면 생산적 기능(productive skills)인 쓰기와 말하기를 증진하는 학습을 해볼 수도 있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영어 수업을 통해 글로벌 사회에 필요한 의사소통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평가체제의 개선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지만, 사실 이것이 원래 이유는 아니다.
이 논의의 결정적 계기는 지난해 2월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사교육 경감대책을 내놓으라고 한 것에 대한 응답이었으니 영어교육의 본질적인 문제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교육정책은 해당 과목이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학습이 되도록 방향 짓는 것이어야 한다. 즉 영어과 교육과정에서 핵심적인 목표로 밝히고 있는 의사소통능력 증진에서 출발해야 하지만, 이번 정책 전환은 사회적으로 드러난 부가적 현상에 대한 처치라는 비본질적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대증적 치료라고 본다.
그러하기에 황 장관도 후에 논리 강화를 위해 의사소통능력 증진을 표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이며, 그렇다면 선후 관계가 잘못된 것이다. 의사소통능력 강화를 위한 정책이더라도 절대평가로의 전환이 목표 도달의 충분조건인지 하는 데도 고개가 갸우뚱거리게 된다. 현재 영어수능시험은 45문항에 5지 선다형이며 그중 17문항이 듣기로 돼 있고 나머지는 읽기와 문법 중심의 문항이다. 이 문항 형식을 그대로 둔 채 평가체제만 절대로 전환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진정 의사소통 증진을 위해 절대평가로 전환하고자 한다면 평가의 내용도 과감히 바꾸고자 하는 시도가 있어야 하고, 교과과정도 의사소통을 위한 장으로 가도록 수정할 필요가 있다.
사교육비 경감 문제에 있어서도 중·고교에서 사교육비 지출이 제일 심한 과목은 수학임을 통계청(2014년) 자료는 밝히고 있음을 볼 때, 수학은 놔두고 영어 사교육비 문제를 거론하면서 평가체제를 바꾸는 것도 뭔가 맞지 않는다. 절대평가 전환이 사교육비 경감을 가지고 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영어 사교육비의 비중이 타 과목에 비해 제일 높은 시기는 초등 3·4학년 때다. 초등 학부모들은 수능이 절대평가로 전환됨과 상관없이 영어실력 기초를 다지고자 영어 사교육을 유지할 것이다.
한편 기업의 35%가 영어실력이 좋으면 연봉 301만원을 더 주는 것으로 돼 있으며, 승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도됐다. 공인회계사와 금융기관 직원 등 화이트칼라 근로자는 영어실력에 따라 몸값이 평균 30∼40%가량 차이 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현실을 아는 학부모가 우수한 학습능력을 가진 자녀가 수험생의 23%가 받는 1등급을 받았으니 이제 영어공부 그만해도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중위권 학생들이 나름대로 한 등급을 올리기 위해 사교육을 받는 건 여전할 것이며 하위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즉 사교육비의 경감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혹여 사교육비의 경감이 일정부분 이루어진다 해도 곧 타 과목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또 변별력 없는 수능시험 결과는 휴지조각에 불과할 것이기에 상위권 대학들은 우수학생 유치를 위해 별도의 대응책을 내놓고 새로이 평가할 것은 불문가지다.
평가의 내용은 그대로 두고 평가 형식만 바꾸면서 의사소통 증진을 위하는 길이라고 하는 것은 나이브한 생각이다. 절대평가의 장점과 나름의 잠재력을 인정하나, 단순한 절대평가로의 전환은 의사소통의 증진 혹은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성과를 낼 가능성이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사회문화적으로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는 영어의 문제는 보다 총체적인 조망으로 진행이 돼야 한다.
이길영 한국외국어대 영어교육과 교수
[이슈 논쟁-‘수능 영어 절대평가 전환’ 이래서 반대] 수학 놔두고 영어만 바꾸면 사교육비 안 줄어들어
입력 2015-10-14 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