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서 쿠르드계 겨냥 폭탄테러… 사망 130명 육박

입력 2015-10-12 03:19
터키 수도 앙카라의 기차역 광장에서 10일(현지시간) 폭탄 테러가 발생한 직후 부상한 남성이 부상한 한 여성을 안고 위로하고 있다. 폭발이 일어나기 직전 이 광장에서는 쿠르드족 반군인 ‘쿠르드노동자당(PKK)’에 대한 터키 정부의 유혈진압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가 예정돼 수백명이 모여 있었다(오른쪽 작은 사진).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역대 최악의 테러로 128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부상했다. 로이터EPA연합뉴스
터키 수도 앙카라 도심 기차역 앞에서 10일(현지시간)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해 128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부상했다. 사상 최악의 테러 참사로 터키 전역이 충격에 빠진 가운데 사건의 배후를 놓고 추측과 음모론이 난무하고 있다.

사건은 이날 오전 10시쯤 시 중심부인 앙카라 기차역 광장에서 발생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목격자들은 한 남성이 가방을 내려놓고 줄을 당기자 폭발이 일어났다고 전했다. 한 목격자는 “집회 무대용 트럭에 걸린 현수막 뒤에서 두 번의 폭발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사고 직후 20여명이었던 사망자 규모는 사고 이튿날 128명까지 늘어났다고 쿠르드계 정당인 인민민주당(HDP)이 밝혔다. 화상으로 중태인 부상자가 많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당시 광장에는 터키 노동조합연맹 등 반정부 성향 단체와 HDP 지지자를 비롯한 친쿠르드계 단체의 집회 참가자 수백명이 집결해 있었다. 이들은 터키 정부와 쿠르드족 반군 쿠르드노동자당(PKK)의 유혈 충돌 중단을 촉구하는 평화시위를 벌일 예정이었다.

아흐메트 다부토울루 터키 총리는 사건이 발생한 뒤 긴급 안보회의를 주재하고 “이번 테러는 자폭테러범이 감행했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며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나 PKK, 극좌 성향 ‘혁명민족해방전선(DHKP-C)’ 등을 테러 용의조직으로 지목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도 기자회견에서 3일간의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한 뒤 강경 대처를 천명했다.

하지만 야당인 HDP의 셀라하틴 데미르타시 공동대표는 올여름 발생한 두 차례의 야당 겨냥 테러와 같은 성격이라면서 “우리는 마피아가 된 살인 국가와 맞서고 있다”고 정부여당을 비난했다. 다음달 1일로 예정된 조기 총선을 앞두고 과반의석 확보와 개헌, 정부 구성에 연이어 실패해 쫓기는 집권 정의개발당(AKP) 정부가 테러의 배후에 존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로이터 통신은 이날 테러 현장에 남은 일부 시위대가 “살인자 에르도안”이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고 전했다.

이날 테러 방식이 지난 7월 남부 수루츠에서 IS 조직원으로 알려진 터키인이 저지른 자폭테러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IS 연루 가능성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IS는 시리아 등지에서 쿠르드족 민병대와 사사건건 충돌해온 앙숙이다. 최근 터키 정부가 IS에 대응하는 국제연합의 일원으로 가세한 이후 “터키 정부와 군대는 노골적인 배교자들 중 하나”라면서 강력한 적대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터키 정보당국이 이번 테러를 IS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동 전문가인 다니엘 니스만 레반트연구소 대표도 CNN에 “테러 규모와 설계가 IS를 (유력한 용의자로) 가리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그간 IS와 터키 정부가 쿠르드족을 공동의 적으로 여겨왔기 때문에 IS가 터키 여당을 자극하지 않고, 터키 정부군은 국경지역에서 IS의 성장을 방치해 왔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의 소너 카가프타이 연구원도 “터키와 PKK 간의 대립이 심화하면 IS가 이득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가디언은 “에르도안 정부는 그간 언론 탄압 등으로 민주주의 시스템의 악화를 자초했다”면서 “특히 러시아의 시리아 개입과 난민 문제로 안보와 민주주의가 동반 위기를 겪으면서 터키 내부의 긴장이 팽배해 왔다”고 분석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