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시공간 초월 ‘진짜 아닌, 진짜 같은, 가짜 현실’… 현실 앞으로 다가온 가상현실

입력 2015-10-13 02:44
사용자가 컴퓨터 및 온라인 영상에 들어가 있는 듯한 생생한 체험을 맛보는 ‘가상현실’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과거에는 생각지 못한 각종 콘텐츠가 쏟아져 SF 영화와 같은 삶이 코앞에 다가왔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갤럭시 S6와 결합해 가상현실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헤드셋 기기 ‘삼성 기어VR’을 선보였다. 삼성전자 제공
한 남자가 커다란 선글라스처럼 생긴 HMD(Head Mounted Display·머리에 쓰고 대형 영상을 즐길 수 있는 장치)를 쓰고 의자에 앉아있다. HMD 안에선 놀이동산 롤러코스터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HMD 속 롤러코스터가 오른쪽 왼쪽으로 기울어지면 남자도 같이 몸을 흔든다. 롤러코스터가 아래로 뚝 떨어지자 남자는 의자에서 몸을 못 가누고 주저앉아버렸다. HMD의 높은 현실감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실제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몸이 움직였다.

한 여자가 HMD를 쓰고 러닝머신처럼 생긴 기계 위를 걷는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동굴 속이다. 그가 발걸음을 옮기는 대로 HMD 속 영상도 마치 실제 걷는 것처럼 움직인다. 그가 손을 뻗어 동굴 구석에 있는 횃불을 집는다. 이제야 어둡던 동굴이 밝아진다. 러닝머신 위를 걷던 그가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란다. 밝아진 HMD 영상 속 동굴에서 괴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가상현실 기기 급성장=미래의 모습이 아니다. 유튜브(Youtube)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는 동영상이다. 미래의 모습이었던 가상현실은 이제 현실이 됐다. 관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가상현실은 특정한 상황을 컴퓨터로 만들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실제로 그 안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기술이다. 과거 가상현실은 비행훈련이나 트라우마 치료 등 특별한 경우에만 활용하거나 전문가들만 사용하는 도구였다. 그러나 최근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기기의 소형화, 고성능 프로세서 등 기술이 발전하면서 가상현실 시장이 대중화되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세계 가상현실 시장 규모가 2007년 720억 달러에서 2020년에는 3910억 달러로, 2030년에는 1조4367억 달러까지 커진다고 내다봤다.

가상현실 시장은 크게 기기 시장과 콘텐츠 시장으로 나뉜다. 시장을 키우고 있는 것은 대중화되고 있는 가상현실 기기다. 그 선두주자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오큘러스VR이다. 오큘러스는 수백만원에 달하던 HMD 가격을 수십만원으로 낮춰 대중화했다. 팔머 럭키는 남캘리포니아공대에 다니던 19세 때 오큘러스를 세웠다. 2012년이다. 그는 개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익명의 다수에게 투자받는 방식) 업체 킥스타터에서 모금 캠페인을 벌였다. 당시 300달러 이상 투자한 사람들에게 오큘러스 리프트라는 HMD 시제품을 보냈다. 일반인들도 관심을 가질 만한 가격이었다.

일찌감치 가상현실 기기의 가능성에 주목한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는 지난해 3월 이 회사를 23억 달러(약 2조5000억원)에 인수했다. 저커버그는 오큘러스의 가상현실 기기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난 7월 2분기 실적발표에서도 가상현실이 비디오에 이은 차세대 화두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오큘러스는 지금까지 개발자용 제품만 만들었지만 내년 상반기에는 일반 소비자용 제품을 처음 출시할 예정이다. 가상현실 기기의 대중화가 한발 더 앞으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HMD 시장은 오큘러스가 앞서 나가는 가운데 소니 삼성 마이크로소프트(MS)가 뒤따르는 형국이다. 게임 분야에 강점을 지니고 있는 소니는 올해 게임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프로젝트 모피어스를 공개했다. 소니의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4에 연동해 이용하는 HMD다. 소니는 모피어스의 정식 명칭을 플레이스테이션VR로 정하고 내년 상반기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 5월 기어VR을 한국에 선보였다. 다른 HMD와 달리 스마트폰에 연동해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MS는 지난 6일 신제품 발표회에서 홀로렌즈를 공개했다. 기존 HMD가 이용자에게 완전한 가상현실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홀로렌즈는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을 만든다. 눈앞에 실제로 보이는 광경에 가상현실을 덧씌우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HMD와 연동되는 가상현실 트레드밀이 새로운 가상현실 기기로 주목받고 있다. 러닝머신처럼 생긴 트레드밀 위에서 HMD를 쓰고 걷거나 뛰는 장치다. HMD에 전쟁게임을 실행시키고 가상현실 트레드밀 위에서 뛰고 걸으면 HMD의 화면에선 전쟁터를 헤매는 장면이 비춰진다. 아직은 고가여서 HMD처럼 대중화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집에서 모나리자를 감상한다?=기기가 대중화된 지 얼마 안 되는 만큼 관련 콘텐츠 시장도 아직 걸음마 단계다. 그래도 가상현실 기기의 가능성을 실감하기에는 충분하다.

역시 게임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가상현실 콘텐츠가 많이 나오고 있다. 소니는 지난해와 올해 세계 최대 게임박람회인 E3에서 서머레슨(Summer Lesson)을 공개해 게임 마니아들을 열광케 했다. 아름다운 소녀와 일대일 과외를 한다는 설정으로, 이용자는 소니의 HMD인 플레이스테이션VR을 쓰고 마치 현실에서처럼 고개를 흔드는 방식으로 소녀와 소통할 수 있다. 기존 가상현실 콘텐츠가 체험에 초점을 뒀다면, 소니의 서머레슨은 상호작용에 강점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엑스박스의 MS도 홀로그램 게임회사 마인크래프트를 25억 달러(약 2조7000억원)에 인수했다. 게임업계가 가상현실 콘텐츠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영화에서도 가상현실 콘텐츠가 나오고 있다. 올 1월에 있었던 선댄스 독립영화제에서는 예술과 기술이 접목된 작품이 상영되는 뉴프런티어 부문 출품작 14편 중 11편이 가상현실 기술을 바탕으로 했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가상현실용 성인영화도 제작되고 있다.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도 HMD용 영상이 올라와 있다. 집단격투의 현장 한가운데서 고개를 돌리면 사방의 몸싸움 장면이 다 보인다.

구글은 전 세계 40여개국의 박물관, 미술관 등을 가상현실 기기로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서울의 안방에서 프랑스 파리 루브르 미술관의 복도를 지나 모나리자를 감상할 수 있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는 의미다.

신생기업 더 보이드(The Void)는 가상현실 테마파크를 만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이용자들이 가상현실에 접속해 놀이기구를 타거나 총싸움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스트라이버 랩스(Strivr Labs)는 미식축구를 배울 수 있는 가상현실 콘텐츠를 선보이기도 했다.

세종=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