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처음 느끼는 중압감 때문이었을까. 18번홀(파5) 25야드 오르막 그린을 향해 친 배상문의 칩샷은 두텁게 맞으면서 그린에 오르지 못하고 다시 굴러 내렸다. 순간 배상문은 얼굴을 감싸 안으며 주저앉았다. 2015 프레지던츠컵 향방이 걸린 12명 싱글 매치 마지막 주자인 배상문과 빌 하스. 전체 승점 14.5-14.5 동점 상황에서 배상문이 이 홀에서 이길 경우 2003년 무승부 이후 12년 만에 인터내셔널팀에 무승부를 선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통한의 미스샷으로 뜻은 이루지 못했다.
11일 인천 송도 잭 니클라우스 골프장에서 끝난 대회 마지막 날 경기에서 미국팀이 인터내셔널팀에 15.5대 14.5로 진땀승을 거두고 대회 6회 연속 우승에 성공했다. 통산 전적 9승1무1패. 하지만 마지막 주자에서 승부가 갈릴 정도로 인터내셔널팀은 명승부를 펼쳤다. 그 핵심에 배상문이 있었다.
#땅을 친 배상문
전날 3일차까지 양 팀은 9.5-8.5로 미국팀이 간발의 차로 앞서 있었다. 12명이 겨루는 싱글 매치에서 승부가 결정 날 판이었다. 하지만 개별 성적에서 상대적으로 앞선 미국은 초반부터 대부분 선수들이 기선을 제압하며 앞서 나갔다. 미국팀의 승리로 쉽게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간헐적으로 내리던 비가 오후 들어 그치면서 인터내셔널팀의 대반격이 시작됐다. 2013년 마스터스 챔피언 애덤 스콧(호주)이 리키 파울러를 6홀 차로 가장 먼저 격파하면서 인터내셔널팀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이후 마쓰야마 히데키(일본)가 J.B 홈스를, 스티븐 보디치(호주)가 지미 워커를 꺾었고, 미국팀은 더스틴 존슨과 필 미컬슨이 승리하면서 12.5-12.5 동점이 됐다. 인터내셔널팀은 아니르반 라히리(인도)와 제이슨 데이(호주)가 패하면서 다시 2점 차로 뒤져갔지만 마크 레시먼(호주)이 세계랭킹 1위 조던 스피스를 누른 데 이어 이번 대회 최고의 기대주 브랜든 그레이스(남아공)가 승리하면서 14.5-14.5 극적인 타이를 이뤘다. 남은 선수는 배상문과 빌 하스. 단장 추천 선수로 프레지던츠컵에 합류한 둘이 승부의 키를 쥐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전날까지 2승1무를 기록하며 인터내셔널팀에 승점 2.5점을 보탠 배상문은 17번홀까지 1홀 차로 뒤져 18번홀에서 이기면 대회 전체 기록이 무승부가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홀의 부담감을 이기지 못한 배상문은 이 홀마저 내주고 팀 패배의 멍에를 혼자 뒤집어썼다. 배상문은 앞선 6번홀(파4)에서도 오르막 칩샷을 올리지 못해 그 홀을 내주는 등 두 차례의 오르막 칩샷 미스에 땅을 쳐야 했다. 배상문은 “긴장한 탓인지 칩샷 실수도 나왔던 것 같다. 그래도 골프는 앞으로 계속할 것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했다. 군 입대를 앞둔 그는 “2년 뒤가 될지 아니면 4년 뒤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프레지던츠컵에 출전해서 그때는 꼭 미국 대표팀을 이기고 싶다”고 했다.
#인터내셔널팀 효자 브랜든 그레이스
인터내셔널팀 선전에는 남아공 듀오 루이 우스트히즌과 브랜든 그레이스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그레이스는 이번 대회에서 5전 전승을 기록하며 승점 5를 따냈고 우스트히즌도 4승1무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대회 첫날 포섬 매치부터 한 조로 묶인 이들은 3일간 펼쳐진 4차례의 포섬과 포볼 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거둬 인터내셔널팀 승점에 절반 가까운 기여를 했다. 마지막 날 매치 플레이에서도 그레이스는 11번 주자로 나서 맷 쿠처를 1홀을 남기고 2홀 차로 이겼다. 지난 2013년 대회에서 4전4패로 부진했던 그레이스의 대반전이었다. 프레지던츠대회에서 5전 전승을 기록한 선수는 2009년 타이거 우즈, 2011년 짐 퓨릭 등 4명뿐이었다.
올해 유럽투어 2승(상금 5위)인 그는 PGA챔피언십 3위, US오픈 공동 4위에 올라 세계랭킹 22위에 랭크된 숨은 강자다. 우스트히즌(랭킹 13위)도 인터내셔널팀 선봉장으로 나서 미국의 패트릭 리드와 비겼다. 인터내셔널팀 닉 프라이스 단장은 이번 대회에서 부진한 랭킹 2위 데이 대신 우스트히즌을 맨 앞에 내세웠다.
반면 미국팀은 45세 노장 미컬슨이 제몫을 다해줬다. 이 대회에서 유일하게 11차례나 개근한 미컬슨은 볼을 바꿔치는 실수에도 불구하고 전날까지 2승1무를 기록하더니 이날 난적 찰 슈워젤(남아공)을 5홀 차로 꺾으며 녹록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랭킹 24위인 그는 단장 추천 선수 가운데 역대 가장 랭킹이 낮은 선수로 미국팀에 합류해 구설에 올랐으나 팀 리더답게 성적으로 자신의 진가를 증명했다.
#제이슨 데이의 추락
인터내셔널팀의 에이스로 기대되던 데이는 이번 대회에서 1무4패에 그치며 체면을 완전히 꾸겼다. 전날 찰 슈워젤과 호흡을 맞춰 스피스 조와 겨뤘던 포섬과 포볼 경기에서 모두 졌던 그는 싱글 매치에서도 잭 존슨에 힘 한번 쓰지 못하고 3홀 차로 완패했다. 데이는 당초 스피스와 싱글 매치에서 맞대결이 예상됐지만 불발됐다. 미국의 제이 하스 단장이 마크 레시먼(호주)의 대항마로 스피스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내심 세계랭킹 1, 2위 간 맞대결을 원했던 프라이스 단장은 “뜻밖의 대진”이라고 코멘트했지만 데이가 존슨과의 대결에서는 이겨주길 은근히 바랐었다. 데이가 싱글 매치에서 승리했다면 인터내셔널팀은 1998년 남아공 대회 이후 17년 만에 우승컵을 가져올 수 있었다. 데이는 경기를 마친 뒤 “최악의 경기였다. 바람이 강해 제구에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자책했다. 올해 마스터스와 US오픈을 석권하며 미국팀 에이스로 떠오른 스피스는 3승2패로 체면 유지는 했다.인천=서완석 체육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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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프레지던츠컵] 배상문, 통한의 미스샷… 연합팀 졌지만 ‘즐거움’ 선물
입력 2015-10-12 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