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신어(新語), 세상을 말한다… 2003년 ‘국회스러운’ 국회· 2014년 ‘오포 세대’ 등장

입력 2015-10-12 02:48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없던 시절에도 에스엔에스(SNS)라는 단어가 있었다. ‘에스엔에스(SNS)’는 2004년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신어다. ‘Saturday Night Skating’의 약자로 ‘인라인스케이터가 매주 토요일 밤 한곳에 모여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일’을 뜻했다. 당시 인라인스케이트가 유행하자 등장했지만 이제는 사실상 사라졌다.

국립국어원은 1994년부터 언론 매체 등을 통해 새롭게 등장한 말인 신어(新語)를 조사하고 있다. 시대별 신어를 보면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이름이 이동권이세요?” 처음 ‘이동권’이라는 단어가 등장했을 때 생소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1999년과 2001년 지하철역 장애인리프트에서 추락 사망사고가 잇따르자 장애인 단체들은 교통 약자의 ‘이동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신어로 등록됐다. 장애인 단체의 목소리에 사회가 반응을 보인 것이다.

관련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법 3조에는 ‘이동권’이 명시되기도 했다. 이 조항은 “교통약자는 모든 교통수단을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해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동권은 아직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단어로 등재되지 않았다.

신어는 사회 변화를 반영한다. 2003년에는 ‘국회스럽다’는 형용사가 등장했다. ‘이전투구, 날치기 따위의 행태를 일삼는 데가 있다’는 뜻이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되기까지 약 10년 동안 국회는 ‘국회스러운’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 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09년 10만명당 자살자가 30명을 돌파하자 ‘불경기로 살기가 어려워 자살을 한다’는 뜻의 ‘경제 자살’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청년실업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관련 신어도 잇따르고 있다. 2005년 각종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 같이 밥을 먹으며 공부하는 모임인 ‘밥터디’가 생겨났다. 취직을 위해 각종 자격증을 딴다는 ‘스펙족’(2005)은 ‘스펙강박증’(2009)과 ‘스펙병’(2010)으로 발전했고, 스펙을 쌓다가 가난해진 사람을 뜻하는 ‘스펙푸어’(2012)로까지 진화했다. 최근에는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2011)에서 인간관계와 주택 구입까지 포기하는 오포세대(2014)로 변신하기도 했다.

지난해엔 ‘절벽’이 들어간 신어가 많이 나타났다. 답답한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현상인 ‘일자리 절벽’, 재벌의 경제적 독점으로 경제적 약자가 불이익을 받는 ‘재벌 절벽’, 과도한 교육비 지출로 부담이 심해지는 ‘교육 절벽’ 등이 그것이다. 김정선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11일 “신어는 사회 변화를 민감하게 반영한다. 국민이 언어를 통해 심리를 드러내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관련 신어는 이제 익숙하다. ‘각종 게임기와 컴퓨터 시설을 갖추고 그 자리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 둔 곳’이라는 뜻의 ‘게임방’과 ‘검색할 단어’를 의미하는 ‘검색어’는 2000년 신어로 등록된 뒤 표준국어대사전에 단어로 등재됐다.

반면 신어는 사라지기도 한다. 국립국어원은 2005년 신어를 대상으로 10년 사이 사라진 신어를 분석해 올해 말 발표할 예정이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