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재즈’에 젖은 자라섬은 뜨거웠다…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현장을 가다

입력 2015-10-12 02:01
결성 41주년을 맞은 퓨전 재즈 그룹 스파이로 자이라가 9일 경기도 가평군 자라섬에서 열린 제12회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메인 무대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스파이로 자이라는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섰다.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제공

잔디가 좀 젖었어도 괜찮다. 재즈가 귀에 익숙하지 않아도 좋다. 부슬거리며 내리는 비도, 갑자기 추워진 날씨도 상관없다. 올해로 12번째를 맞은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현장은 축제의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11일 저녁 경기도 가평군 자라섬에서는 축제가 막바지로 흐르고 있었다. 스페인 플라멩코 연주팀인 후안 카르모나 셉텟, 브라질 최고의 여성 보컬이자 기타리스트 바디 아사드, 독일 최초의 재즈뮤지션 클라우스 돌딩거스 패스포트가 차례로 메인 무대에 올랐다. 한순간도 놓치기 아까운 듯 관객들은 뜨겁게 반응하며 열중했다. 러시아의 색소포니스트인 이고르 부트만과 모스크바 오케스트라가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

전날 헤드라이너는 ‘아프리카의 스팅’이라고 불리는 카메룬 출신의 베이시스트 리처드 보나였다. 그가 영어가 아닌 카메룬 언어로 부르는 재즈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베이시스트지만 보컬로도 잘 알려져 있다. 보나는 아프리카 감성으로 자라섬을 찾은 수많은 재즈팬을 열광시켰다.

이날 오후 독일 그룹인 디터 일그 트리오는 재즈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재즈의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무대를 선보였다. 베토벤의 유명한 곡들을 재즈로 편곡해 관객들이 어떤 곡인지 맞혀보는 재미를 선사하기도 했다.

비가 오고 날씨가 추워서 축제를 즐기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라섬을 찾은 사람들에게 궂은 날씨는 문제가 안 되는 듯했다. 돗자리는 축축했지만 그 위에서 담요를 겹겹이 두른 채 도시락에 와인을 마시며 음악을 듣는 이들이 가득했다.

서울에서 온 이지혜(29·여)씨는 “트리오 파올로 프레수 공연 때문에 비가 온다는 예보에도 토요일 티켓을 구매했다. 재즈를 잘 모르는 친구들과 같이 왔는데 축제에 걸맞은 음악들을 들려줘서 다들 즐거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 축제로 자리 잡았다. 황무지나 다름없던 자라섬을 낭만적인 장소로 바꾼 것도 재즈 페스티벌의 힘이었다. 잔디가 있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돗자리가 깔렸다. 아마추어 재즈 뮤지션들의 무료 무대 앞에도 재즈 팬들이 자리를 지켰다. 캠핑존이 잘 갖춰진 자라섬에서의 축제는 가족 단위의 축제 참가자들을 불렀다. 텐트가 없어도 글램핑 숙박권을 구매하면 캠핑하는 기분을 만끽하면서 편하게 축제를 즐길 수 있다.

보나의 공연은 자칫 무산될 뻔했다. 미국 뉴욕에서 아시아나항공을 타고 오려던 보나는 ‘베이스를 기내에 실을 수 없다’는 이유로 탑승할 수 없었다. 아시아나는 규정상 가로 55㎝, 세로 40㎝, 폭 20㎝가 넘으면 위탁수하물 처리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보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아시아나가 탑승을 거절했다. 내가 마치 무기를 들고 타는 것처럼 취급했다”고 적었다. 그는 다음날 다른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가평=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