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묘한 한반도 정세변화에 주도권 놓치지 말아야

입력 2015-10-12 00:39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나 핵실험 같은 전략적 도발 없이 사상 최대 규모의 노동당 70주년 행사를 마쳤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열병식 연설에서 ‘경제·핵 병진노선’이라는 표현 대신 ‘경제·국방 병진노선’이라는 용어를 썼고, ‘핵’을 언급하지 않았다. 대남 강경 발언도 없었다. 다만 미국과 어떤 형태의 전쟁도 벌일 수 있다고 강조했고, 조선중앙방송이 생중계를 하면서 ‘다종화되고 소형화된 핵탄두를 탑재한 전략 로켓’이라는 표현으로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과시했다.

중국은 권력 서열 5위의 류윈산(劉雲山)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보내 그동안 냉담하게 대했던 북한과 관계 복원의 움직임을 내보였다. 서방 세계가 주시했던 70주년 행사에 즈음해 북한이 도발적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은 일단 중국을 의식하고, 국제사회에 논란거리를 제공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배어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장거리 로켓 발사 준비 움직임은 적어도 2∼3주 전에는 알 수 있기 때문에 아직 발사 징후가 없는 것은 이달 말로 예상되는 남북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무산시키지 않겠다는 뜻이다. 속단할 수는 없지만 북한의 이러한 태도는 한반도 주변의 정세 변화를 바라는 신호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김정은-류윈산 간 대화는 현 정세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북핵 불용이라는 중국 입장과 비핵화와 관련해서는 전혀 외부 세계와 대화를 갖지 않던 북한이 최고위급 대화를 갖고 얘기를 나눴다는 자체가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당사국 5개국은 6자회담 재개 조건에 대한 북한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이른바 ‘탐색적 대화’를 추진해 왔지만 북한이 선뜻 응하지 않고 있다. 중국이 이번 대화에서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북한을 설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성 김 미국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겸 대북정책특별대표도 지난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평양이든 어디든 북한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북한의 ‘비핵화 의지’라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북·미 대화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미·중의 미세한 전략 변화나 북한의 태도 등 한반도 정세가 미묘한 기류를 타고 있는 정황들이다.

이제는 우리 정부가 탐색적 대화를 보다 구체화시킬 수 있도록 외교 역량을 발휘할 시점이 왔다. 이산가족상봉과 당국 간 회담을 계기로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고 오는 주변 여건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 오는 16일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한·중·일 정상회담에서도 북한 문제를 진전시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다. 유연한 전략 없는 무조건적 원칙론은 당사자인 남한을 변두리로 내몰 가능성이 있다. 남북 관계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 정세는 우리 정부가 주도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