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이성규] ‘담합’ 조장하는 공정위

입력 2015-10-12 00:30

들러리 업체는 입찰 담합에서 ‘약방의 감초’다. 사전에 짜고 치고 낙찰을 받은 건설사가 주인공 격이지만 들러리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4대강 담합 등 수십 년간 반복되는 고질적인 입찰 담합 관행에서 건설사들은 주연과 조연을 사이좋게 주고받으며 부당이득을 취해 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들러리 업체의 과징금을 감경해주는 과징금 고시를 개정했다. 입찰 담합 사건의 기본 과징금은 들러리 건설사들의 관련 매출액을 모두 더해 정해져 들러리 숫자가 많을수록 과징금이 커지는 구조였다. 공정위는 이번에 이를 180도 바꿔 들러리 숫자가 늘수록 과징금 부담이 적어지는 구조로 바꿨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는 숫자에 상관없이 들러리 사에 대한 기본 과징금은 50% 이내에서만 깎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10개사가 들러리를 서면 감액이 80%까지 가능하다.

그러나 공정위 논리대로 낙찰을 받은 건설사와 들러리 사 간의 과징금 부담 형평성은 개선됐을지 몰라도 향후 입찰 담합 사건에서 이 논리는 역으로 담합을 조장할 수 있다. 건설사들이 들러리를 최대한 많이 세워 향후 적발 시에도 과징금 부담이 없도록 담합을 설계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들러리에 주저하던 건설사들도 담합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공정위 관계자는 11일 이에 대해 “입법예고 기간 중 이런 의견을 제출한 곳이 한 곳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입법예고 시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이를 알려왔지만 유독 이 건에 대해서는 지난 7일 입법예고가 모두 끝나고 시행될 때가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자료를 냈다. 입법예고 기간은 정부가 8·15특별사면에서 담합 건설사에 대한 면죄부를 줄 때와 겹친다. 경제민주화 주무부처인 공정위가 본분을 망각한 채 경제 활성화 명분에만 코드를 맞추는 데 열중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성규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