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안전보관 상태부터 챙겨라

입력 2015-10-12 00:38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장자로 알려진 배모(52)씨가 정부에 반환하는 조건으로 무려 1000억원을 요구했다는 소식은 씁쓸함을 너머 허탈함마저 갖게 한다(국민일보 10월 10일자 8면). 2008년 7월 배씨가 처음 공개한 직후부터 소유권을 둘러싸고 소송이 이어진 데다 지난 3월에는 상주본 보관 장소로 추정된 배씨의 집에 불이나 훼손 여부에 관심이 쏠렸는데 이번에 다시 거액의 보상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가 한 개인에 의해 우롱당하는 느낌이다. 배씨는 문화재청이 상주본의 가치를 최소 1조원 이상이라고 밝힌 만큼 1000억원을 받더라도 자신이 오히려 9000억원 이상 나라에 헌납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고도 한다.

상주본은 2011년 6월 대법원 판결에 의해 배씨가 아니라 골동품상인 조모(2012년 사망)씨 소유인 것으로 확정됐다. 조씨가 자신의 물건을 배씨가 가져갔다고 주장하며 물품인도 청구소송을 제기, 승소했다. 조씨는 사망 전 상주본을 문화재청에 기증했다. 법적 소유권은 이미 정부에 귀속된 셈이다. 그러나 배씨는 상주본을 조씨에게 돌려주지 않았고 행방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당국이 자택 등을 몇 차례 수색했으나 찾지 못했다.

지금 가장 우려되는 것은 상주본의 보존 상태다. 569년 전에 발간된 터라 전문적인 관리가 시급하다. 한 개인의 엉뚱한 욕심에 국보급 문화 자산이 손상될 가능성이 높다.

상황이 해결되지 않은 것은 무엇보다 당국의 소극적인 자세 때문이다. 법적 소유권이 있음에도 정확한 관리 상태는 물론 행방조차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은 방치한 것과 마찬가지다. 더 이상 문화재청에만 맡겨 둘 수 없다. 정부는 관련 규정 등을 고쳐서라도 반드시 이른 시일 내 반환받아야 한다. 물론 응당 돌려받아야 될 것을 받으면서 거액을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